시간을 짓다
이 동네에 산 지 도 어느덧 2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이사를 간 친구도 있지만, 가끔 동네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여전히 있고 봄이면 벚꽃이 활짝 피다 못해 흐드러지는 길 역시 여전하고 사라지고 바뀐 상점들이 있으나 굳건히 기억과 생활 속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역시 여전하다.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면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오고 늘 마주치는, 자전거를 타고 종횡무진 다니는 철수형(본명은 모르나 동네에 한 명씩은 있는, 십 수 년째 아이들에게 형 혹은 아저씨로 불리는, 직업이 자전거 타는 사람인 그 형)도 그렇고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는 십년 넘게 고시생인 아저씨,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시던 백발의 할아버지 까지. 그리고 작은 동네여서 더 각인 된 어느 노부부가 있다. 할아버지는 한국인, 할머니는 독일인 인데 매일 같은 시각 산책하는 부부의 산책 법이 보통의 예상과는 달라 유독 더 기억에 남는다.
두 노인은 한 번도 나란히 서서 걷는 법이 없다. 할아버지가 반 보 내지는 한 보 앞서고 그 뒤를 할머니가 잇는다. 할머니 보다 한 뼘쯤 작은 키의 할아버지가 앞선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고 할머니는 긴 다리로 종종 걸으며 할아버지 뒤를 따르는 광경은 흔히 '이렇게 늙어야지' 마음먹게 하는 사진 속 나란한 노부부의 뒷모습은 아니다. 그렇지만 절대 멀어지는 법이 없고 절대 부딪히는 법이 없다. 할아버지는 뒤따르는 할머니의 속도에 맞춰 걷고, 할머니는 앞서 걷는 할아버지의 걸음에 장단을 맞춘다. 대화를 나누며 걷는 걸 본 적 없지만 (앞에서 말하고 뒤에서 대답하기는 쉽지 않으니 당연한 걸지도) 정확하게 같은 거리를 두고 걷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손을 잡고 걸어야만 금슬 좋은 부부인가, 서로의 걸음에 맞춰 걷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닌가, 노부부의 산책길을 눈으로 따라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에게 맞춰, 내가 널 사랑하잖아. 이건 이렇게 해, 너는 날 사랑하잖아. 사랑한다는 이유를 권력처럼 내세워 우리는 상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떼쓰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는다 말해 버린다. 그러니 상대를 맞춰 주는 걸음은 쉽지 않다. 빨리 와, 빨리 걸어, 넌 왜 이렇게 천천히 걷는 거야. 천천히 좀 가, 왜 이렇게 빨라.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꼭 최선은 아닐 것이다. 같이 걷는 것은 서로의 보폭을 맞추는 일이다. 한걸음 더 앞선 그를 따라 내 걸음을 조금 빨리, 반 걸음 뒤에 걷는 그에 맞춰 내 걸음을 조금 천천히, 그렇게 서로의 보폭에 박자를 맞춰 걷는 일, 그렇게 같이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