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 # 03
지금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다.
남산 북측순환로. 이름은 ‘순환로(路)’지만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다. 길 양옆으로 낮은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그래서 여름 러너들이 즐겨 찾는 코스 중 하나다. 늘 ‘언젠가 달려야지’ 생각만 하다, 얼마 전 처음으로 이 길을 달렸다.
왕복 6.62km의 짧은 코스였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숨이 금세 거칠어졌다. 첫 번째 오르막을 넘고 길게 펼쳐진 내리막을 마주한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돌아올 때는 이 길을 다시 올라야 할 텐데, 너무 힘들겠다.’
순간 발걸음이 멈칫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지금의 편안함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차례 만난다. 몸은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마음은 늘 앞서간다. 다가올 오르막, 다가올 고통, 다가올 피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그림자가 걱정과 두려움을 불러내는 것이다.
‘나는 왜 지금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늘 그랬다. 아직 오지 않은 고통, 어쩌면 닥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현재를 놓치고 있었다. 내리막을 반쯤 내려올 즈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현실에 충실하자. 지금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다.’
그 순간부터 발을 내딛고 호흡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복잡한 생각은 서서히 사라지고 ‘지금’만 남았다. 내리막을 달리자 시원한 바람이 몸을 스쳤고, 다리는 한결 가벼워졌다. 현재에 집중하자 달리는 순간이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하마터면 다가올 걱정 때문에 이 즐거움을 놓칠 뻔했다.
인생도 그렇다. 사람은 늘 앞서 걱정한다. 불행이나 실패,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을 미리 끌어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남산을 달리며 나는 작은 진실 하나를 깨달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내리막길의 바람이 시원하다면, 그건 그 순간의 진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