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십 대는 늘 불안했고 그 불안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 번 얼룩이 생기면 잘 지워지지 않는 옷감처럼,
학교폭력은 내 마음속 옷감을 누더기로 가득 채워버렸다.
나는 그 옷감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누더기 옷감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새로운 옷감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거리가 멀고, 언니가 다니고 있는 사립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좁디좁은 시골 동네, 똑같은 친구들과 또다시 반복될 학교폭력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런 나와 달리 부모님은 이미 언니의 사립고 진학만으로도 부담이었기에,
나까지 보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우리 집 형편에서는
내가 집 근처 전문계 학교를 진학하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부모님은 나를 따로 방으로 불러 가까운 학교에 가달라고 말씀하셨다.
조심스러운 어조로 집안 사정을 설명하시던
부모님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괴로움이 서려 있었다.
그때의 나는 미성숙한 나이였음에도
부모님의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매달렸다.
“제발 언니 학교로 보내주세요. 가서 열심히 잘할게요.”
무릎과 방바닥이 눈물로 흥건해질 정도로 울며 호소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처럼 부모님은 끝내 내 손을 들어주셨다.
그날 이후, 학교 가는 길이 지옥 같았던 나는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하지만 설렘 가득했던 고등학교는
생각만큼 드라마틱하게 내 삶을 바꾸어주지 않았다.
지독하게 나를 짓눌렀던 폭력의 그림자는 옅어졌지만,
세상의 전부가 친구였던 그 시절은 또 다른 어려움을 내게 새롭게 안겨주었다.
그건 바로 ‘관계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친구들에게 미움받을까 봐 내 마음을 숨기고, 멀어지는 순간마다 불안에 짓눌렸다.
폭력은 사라졌지만, 그 트라우마로 비롯된 불안의 씨앗은
내 모든 인간관계를 괴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말도 안 되는 행운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중학교 때 친했지만 반이 달라 멀어졌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고, 새로 만난 친구들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먼저 말을 걸어줬다.
나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학교 매점을 팔짱 끼고 다녔고,
이동수업 때마다 나를 제일 먼저 챙겨주었다.
나는 늘 웃었다. 기적 같았다.
그러나 그 기적은 한 학기를 넘기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게 친구들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눈물로 내게 말했다.
“넌 나를 소외시켰어.”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관계는 급속도로 멀어졌고,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레, 특별하지 않은 이유들로 말이다.
나는 친구가 생긴 게 너무 기뻐서 오래된 소중한 친구의 외로움을 모른 척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싶었고, 그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게 너무 무서워서, 진짜 중요한 사람을 외면했다.
그렇게 나는 늘 불안했고,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친구들이 멀어질 때마다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묻는 게 더 나에게 상처가 될까 봐,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모르게 학습된 ‘방어기제’였다.
그때 이후로 나는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중학교 때처럼 상처받을까 봐,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지는 게 오히려 덜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누구에게나 친구가 전부인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내 불안과 집착이 그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지나가는
‘사춘기의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른네 살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관계가 어렵다.
먼저 연락하는 일이 조심스럽고, 안부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도 망설여진다.
결혼을 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는데도 가끔은 이상하게 외롭다.
그 외로움을 사람들 사이에서만 해결하려 했고,
그래서 늘 관계의 ‘을’로 살아왔다.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뭘 싫어하는지도 몰랐다.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정작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나조차도 나를 모르는데, 과연 남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멍해졌다. 그래, 그게 문제였다.
나는 늘 나를 제쳐둔 채, 남을 이해하려고만 했다.
이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편하게 해 주고,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까.
그 질문들에서부터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서른네 살의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내 안의 지질하고 어두운 구석까지 마주했다.
조금은 서툴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조금 나 스스로와 더 가까워진다면
언젠가는 비로소 가장 가까운 ‘나’를 만나게 되겠지.
그때가 오면 나는 비로소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또 다른 ‘너’와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