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율이(8세.여)는 초등학교 입학 후 미술학원에 다니려 했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무산됐다. 아내의 안내에 따라 서율이가 강좌를 골랐다. 클래스 101에서 ‘엘리와 함께하는 색연필 드로잉’ 강좌를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의 한계와 라떼의 한계 역시 예상은 했지만 온라인 수업을 아이가 혼자듣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도 그림을 배워본다는 마음으로 함께 수강하기로 했다. 온라인 수업이라 간단할 줄 알았는데 영상 송출과 미술도구 세팅까지 해보니 마치 밥상을 차리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같이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높아질 것이기에 율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을 세팅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시간과 공이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몰입'을 했다. (아! 이래서 이런 걸 하는구나) 하지만 강사가 특정한 색을 쓸 때는 서로 그 색연필을 쓰려고 싸우기도 했다. 율이 먼저 쓰고, 내가 나중에 색을 쓰다 보니 따라갈 수 없어서 그냥 비슷한 색을 쓰게 됐다. 이래서 아이들이 물건을 두고 싸우는지 알겠다. 색연필 세트를 하나 더 사야 하나 생각했지만 값이 비싸 관두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의 자아는 작가보다 더 잘 그리겠다는 욕망을 가져버렸다. 그리고 틀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율은 나와 다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막 그린다. 아니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린다. 작가의 그림과 다르다고 해도 침울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율과 나의 그림에 점수를 매긴다면 강사는 얼마를 매겼을까?
실패해도 괜찮은 삶
어떻게 보면 미술을 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해서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실패가 필요하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묵묵히 해나가면 될 일이다. 그런 실패가 두려우면 다시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온라인으로 변화되는 세상에서 나의 실패나 고민이 중요하지 않다. 강사는 그냥 녹화된 모습대로 송출될 뿐이다. 여기에 대한 피드백을 나 스스로 혹은 나와 함께하는 율이 내릴 것이다. 이렇게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동기부여와 지속성, 실패 관리를 위해서 같이 하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의 사각지대는 여기에 있다. 인간의 관계와 소통의 DNA가 작동하지 않는 온라인 수업이라면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온라인 수업은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할 것인가? 수단과 목적이 전치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니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할 때는 힘들더라도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내가 배워서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패의 연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지만... 실패해도 괜찮은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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