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아빠가 떠나고 한 달 정도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을 하며 바쁘게 지냈고, 그 시간 속에서는
아빠를 떠올릴 틈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괜찮았던 게 아니라 미뤄두고 있었던 거라는 걸.
2020년 2월,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추기 시작했다.
출근하던 사람들이 집에 머물게 되고,
나 역시 재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때, 미뤄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혼자가 되자 내 안에 있던 생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건 조용하지 않았다.
나를 찌르고, 물어뜯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빠가 떠난 이유가
모두 내 탓인 것 같았다.
아빠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 모든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 몇 분의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버린 것 같았다.
'그때 따뜻하게 말했더라면 괜찮았을까.'
'주말이 아니라 바로 갔어야 했나.'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매분, 매초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어떤 날은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왜 그렇게 떠나버렸는지,
왜 나를 이런 상태로 남겨두었는지.
원망스러워하는 그 감정이 올라오면 나는 나 자신이 더 싫어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눈을 떠도 일어날 수 없었다.
씻지 못했고, 먹지 못했다.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그저 살아 있기 위해 조금을 먹었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핸드폰으로 같은 단어들을 검색했다.
우울, 불안, 죽음...
그 단어들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더 이상 사람답게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하나님이 나를 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고통은 내가 끝내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 삶은 더 이상 살아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먹고사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 질문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