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선창가 아이들

다이빙과 배치기

by 정온


건너편 설리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에 포근히 자리 잡은 바닷가에는 작은 선창과 큰 선창이 있었다. 작은 배는 작은 선창으로, 덩치 큰 고기잡이배는 큰 선창에 정박하곤 했다. 수면이 높은 큰 선창은 언제나 큰 배들의 자리였고, 밀물이 차오를 때면 작은 선창에도 조금 더 큰 배들이 들어올 수 있었다.


불 꺼진 어두운 새벽,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면 선창가는 이내 조용해졌다.


친구네 집은 멸치어장을 했는데, 매일 잡아온 멸치를 큰 가마솥에 가득 삶아 선창가에 널어놓았다. 멸치 삶는 구수한 냄새가 온 바닷가에 퍼졌고, 군침 도는 냄새에 이끌린 아이들에게 멸치는 더할 나위 없는 간식이었다.


입학 전에는 옷을 걸치지 않은 '자연인'으로 물속을 누볐고, 조금 철이 들면 빤스만 입고 물에 들어갔다. 몇몇 철늦은 남자아이들은 수줍음이 없어 여전히 옷을 벗고 헤엄쳤는데, 그 시절에는 그런 모습조차 누드 비치처럼 자연스럽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다섯 살 무렵, 수영을 잘 못하던 나는 언니와 조심스럽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파서 언니에게 "고래가 다리를 물었어!" 하고 소리쳤다. 밖으로 나와 보니 무릎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바닷가로 이어지는 개울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가 천을 찢어 무릎을 묶어 지혈을 해주셨다. 한참을 울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커서야 모래밭 바위틈에 붙어 있던 굴 껍데기에 베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뱃일을 나간 부모님 없이 언니와 둘이 천으로 상처를 묶고 있던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상처는 아직도 얼룩져 남아있다.


취학 전 아이들이나 저학년들은 선창가 옆 모래밭에서 튜브를 끼고 살랑이는 파도에 몸을 맡겼다. 조금 더 자라 고학년이 되면 '수영의 신'이 되어 선창을 오가는 수영과 다이빙을 즐겼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왕복으로 헤엄치며 서로 누가 더 많이 했는지 자랑하기 바빴다. 나도 큰 마음먹고 한 번 왕복을 했는데, 발이 닿지 않는 깊이가 공포스러웠다.


다이빙을 할 때면 코에 물이 들어갈까 봐 한 손으로 코를 틀어쥐고, 다른 손은 높이 들어 물 깊이를 가늠했다. 때로는 돌고래처럼 몸을 던지기도 했고, 간혹 남자아이들은 잘못 뛰어들어 배치기를 했다. 그러면 배가 아프다며 따뜻한 선창가에 한동안 엎드려 있었다. 얼마나 물에서 놀았던지 입술은 시퍼렇게 질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바들바들 떠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내 추위를 느끼면 달궈진 갯바위에 대자로 여럿이 드러누워 체온을 올렸다. 그렇게 한여름 선탠을 즐기다가 다시 더워지면 풍덩 바다로 들어가길 반복했다. 그중 남자애들의 등을 보면 얼마나 놀았는지 온통 햇볕에 그을려 얼룩얼룩 피부가 벗겨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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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시간을 바닷가에서 놀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창가에 널어놓은 따뜻한 멸치를 한 줌씩 집어 먹었다. 비리지 않고 단맛이 돌던 그 멸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매일 한가득 잡아오는 멸치라 누가 집어 먹든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고, 고깃배가 주업인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듯 자유를 주었다. 가끔 말리는 '디포리'를 까먹는 맛은 흔한 멸치보다 훨씬 별미였다.


아이들은 갯바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고, 큰 선창에서도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배가 고프면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를 작은 돌로 찧어 따먹었다. 머리 위 수면보다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해 청각을 따고, 발가락으로 모래를 훑어 조개를 캐기도 했다. 여름에는 우뭇가사리 냉국을 많이 먹었는데, 아이들은 제각각 바닷가로 나가 우뭇가사리, 청각 등을 한가득 캐서 집으로 가져갔다. 생각해 보면 참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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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에게 쌍둥이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아마 2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조금 커서 선창가에서 놀았지만, 어린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겼다. 바닷가 아이들은 일찍 수영을 배우는 덕에 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는지 튜브도 없이 깊은 곳으로 나아왔다. 그때 갑자기 쌍둥이 중 한 아이가 힘에 부쳤는지 손을 들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지만, 국민학생이던 나는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 아이를 붙잡고 헤엄쳐 나왔다.


헤엄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바닷물에 뜨는 법도 배웠다. 일명 '생존 수영'이다. 가만히 누워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몸은 둥둥 물 위에 떠다녔다. 이 자세는 개구리헤엄을 조금 할 줄 알면 알려주는 '꿀팁'이었다.


그러다 보니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려 별명은 '깜순이'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유독 피부가 까매서, 버스를 탔을 때 처음 보는 분이 엄마가 외국 사람인지 묻기도 했다. 그래서 어릴 적 내 꿈은, 피부를 벗겨내면 뽀얀 속살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동심이 푸르게 물들던 시절, 바닷가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운동장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망설임 없이 고향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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