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
추억은 금고 속 금괴처럼,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언제나 문을 열면 빛난다.
바닷가는 내게 놀이터이자 보물창고였다. 초록빛 바다가 멀리 물러나는 썰물 때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고무 대야나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아이들은 소쿠리에 작은 호미를 담아 바래를 나섰다. 평소 어른들은 앞산 너머 물 깊은 갯바위 쪽으로 갔지만, 파도가 위험해 사리물 때는 주로 물이 다 빠지면 나타나는 마을 끝자락 돌뻘밭으로 향했다. 조그마한 바위들 아래에 앉아 호미로 슥슥 바지락을 캤다. 어른들에게 바래는 생계였지만, 우리에겐 늘 왁자지껄한 놀이였다.
바래는 웃음이 솟구치는 거대한 들판이었다. “하나, 둘, 셋!” 소리를 맞춰 무거운 바위를 두세 명이 힘을 모아 뒤집었고, 운이 좋으면 그 아래 숨어 있던 해삼을 잡았다. 아랫마을 친구들은 능숙하게 조개를 캐 소쿠리에 한가득 담았지만, 나는 늘 빈 껍데기와 모래를 더 많이 담았다. 바지락 캐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산과 들에서 뛰어놀던 나는 친구들과 강아지풀을 한 줌 뽑아 모래 구멍에 쏙 넣어 쏙(갯가재)을 잡곤 했다. 위아래로 살랑살랑 흔들면 강아지풀을 물고 쏙이 올라왔고, 우리는 재빨리 잡아채며 기쁨의 박수를 쳤다. 하늘의 별처럼 예쁜 불가사리가 해변에 밀려오면 소쿠리에 넣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는 "아이고, 이걸 왜 가져왔니?" 하며 남새밭에 뿌렸다. 어린 마음엔 저 별을 왜 버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마을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내려와 내 앞에 섰다. 부산에 사는 친구네 고모라는 걸 짐작했다. "야, 여기 탈래?"라는 말에 쭈뼛거렸다. 승용차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 차 문 여는 법도 몰랐다. 그렇게 차를 타고 집 앞에 내렸다. 친구 고모는 내가 캐 온 바지락을 보더니 대뜸 사겠다고 했다. 실력도 없는 내가 애써 모은 바지락을 달라고 하니 얄미웠다. 엄마는 시골 인심으로 무슨 돈을 주냐며 "국 끓여 먹어" 하면서 소쿠리째 줘버렸다. 한동안 그 친구 고모는 여우처럼 보였다. 며칠 후, 다시 우물에서 물을 긷다 마주쳤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두레박으로 물을 긷고 있는데, 그녀가 내 손가락을 덥석 잡더니 "얘, 너 손 참 예쁘다. 내 손이랑 바꾸자"라고 말했다. 마치 내 손을 가져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짙은 화장과 붉은 입술을 한 그녀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어촌살이는 고된 일도 많았지만, 늘 웃음이 함께하는 즐거움의 날들이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뻘에 질척거리며 장난을 치고, 갯벌에서 신기한 생물을 발견할 때마다 함께 웃었다. 간혹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긴장감에 겁에 질린 적도 있었다. 더 캐고 싶은 어린 욕심에 친구들은 "야! 물 들어온다, 빨리 와!" 소리를 쳤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물이 찰랑거리는 시간에도 바지락을 서둘러 캤다. 무거운 대야를 이고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저녁상에 올라온 싱싱한 바지락국은 최고의 보약이었다. 엄마가 잡아온 큰 소라를 삶아 먹거나, 마당에 걸린 양은솥에 듬뿍 고동을 삶아 여름밤 내내 까먹는 맛은 어느 요리도 부럽지 않은 일품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국민학교 앞에 작은 저자(시장)가 열렸다. 엄마들은 해거름에 수확한 야채를 묶어 대야에 담고, 바래에서 얻은 고동, 조개, 삶은 옥수수와 함께 새벽길을 나섰다. 관광지라 민박과 텐트로 북적였고, 외지 사람들이 붐비는 날이면 저자가 반짝 열렸다. 삶의 현장은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사리 손으로 엄마를 따라나서거나, 엄마가 바쁘면 아주머니를 따라가 가져온 야채나 삶은 옥수수, 풋콩을 펼쳐놓고 장사를 했다. 한 단에 100원, 200원… 엄마가 알려준 값을 그대로 외워 물건을 팔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 나이에 장사의 기술을 배웠다.
언젠가 언니와 이웃 아주머니를 따라 저자에 갔는데, 물건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날이 밝아왔다. 순간, 선생님이 우리 앞에 서 계셨다. 언니는 달아났고, 나는 수줍어 고개를 푹 숙였다. 장 보러 오셨다가 우리를 보고 아는 체를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다시는 안 가겠다고 투정 부렸지만, 결국 또 새벽바람을 맞으며 엄마 손을 잡고 저자에 따라나섰다.
그 시대, 아이들은 자연스레 가족의 일손이 되었다. 갯벌에서, 밭에서, 시장에서, 그 시간들은 고단함만이 아니라, 웃음과 배움이 함께한 기억으로 남았다. 시골의 추억은 지금도 흐려지지 않고 스쳐 가는 화면처럼 선명하다. 어두운 해변에 파도에 부딪혀 반짝이는 발광 플랑크톤인 시거리처럼 살아 숨 쉬며 여전히 마음을 환하게 비춘다.
도시의 삶이 때론 숨 막히는 순간이 오면, 나는 눈을 감고 바래를 한다. 어린 시절 갯벌의 짠 내음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떠올리다 보면 아주머니,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정이 그리워진다.
바래는 갯가 사람들의 삶의 한 부분이자, 우리에겐 놀이였다. 썰물에 드러난 갯벌은 보물창고였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을 배우고 우정을 쌓았다. 진흙투성이가 되어 웃던 시간, 그 모든 기억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 단단한 조개껍데기처럼 남아 있다. 추억을 새기다 보니 어느새 그리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