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남새밭 이야기

by 정온

아래채 옆 마당을 돌아나가면,

우리 집 남새밭이 있었다.


감나무 세 그루, 유자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시던 포도 넝쿨.
앞마당 대문 옆에는 커다란 대추나무가
늘 든든히 집을 지켜주고 있었다.


엄마의 손길은 언제나 푸른 채소들에 닿아 있었고,
반찬거리가 없을 때면
아무거나 뽑아 물에 씻어 밥상에 올렸다.
오이, 가지, 애호박…
시골 사람들의 밥상은 남새밭에서 시작되었다.


겨울을 지나 약부추가 고개를 들면
할아버지는 산삼만큼 귀하다 하셨다.
엄마는 그 새싹을 곱게 잘라
겉절이로 무쳐 올렸다.
풀어놓은 닭이 낳은 귀한 알은
손님이 오면 꼭 내어 드렸다.


남새밭 한쪽 모퉁이에는 염소 가족이 살았다.
윤기가 흐르는 어미 염소는 해마다 새끼를 낳아

엄마의 쏠쏠한 용돈이 되어주곤 했다.


종달새가 노래하는 봄이면
남새밭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구석에 심어둔 딸기가 앙증맞게 붉어가고,
방울토마토가 수줍게 빛을 띠었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오이와 호박은
초록의 계절을 더했다.
감나무 꽃이 떨어지면
무명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소꿉놀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포도 넝쿨은 담장을 따라 아치를 이루어
양철 지붕까지 기어올랐다.
포도 알이 익어갈 즈음이면
우리는 손을 뒤로 한 채
입으로만 송이를 따먹는 놀이에 빠졌다.
온통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부모님은 뱃일로 늘 바빴고,
젖먹이 때부터 우리를 키우신 건 할아버지였다.
가을이면 대추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늘어졌다.
살짝 익은 대추를 따 먹고,
대나무 짝대기로 감을 따던 기억이 남아 있다.


겨울이 오면 유자나무가 노랗게 빛났다.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든 유자청은
도시에서 내려온 친척들에게
보자기에 싸서 들려 보내는 선물이었다.


남새밭의 나무들은

단순히 열매를 맺는 존재가 아니었다.


계절마다 우리 삶을 품어주었고,
추억을 불러내는 따뜻한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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