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나는 빌딩 숲 속 도시에서 살았다. 매일 아침 복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사람들 틈에서 부딪치며 가끔은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함부로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시계는 째깍째깍 흘러 마치 1년의 시간을 한 시간으로 몰아 돌리듯, 어른의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업무의 특성상 남들이 한창 여행 갈 시즌에는 더 바빴고,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조차 모르고 지냈다. 돌아서면 계절이 바뀌고, 돌아서면 또 해가 바뀌는 순간들을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감과 바꾼 시간일지도 모른다.
학생의 신분을 벗고 어른이 되자, 좀 더 어른스러워 보이려 애쓰기도 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높은 곳을 동경하듯, 나 역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될 줄 알았던 착각을 품고 있었다. 현실과 마주해 어른이 되어보니, 오히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극히 드물었고, 맞추고 수긍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았다. 나를 앞세우는 것은 곧잘 눈에 띄는 행동이었기에, 나름대로 둥글둥글 맞춰 지내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남들이 나와 같지 않으면 이상하다 여기고, 나만 옳다고 고집하던 어리석음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진리, 그리고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미움을 안고 살아가는 건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이었기에, 비록 사랑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하고 노력하며 나를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오직 꿋꿋이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문득 길을 잃을 때가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걸까.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 마을을 회상했다. 왁자지껄한 아낙네들의 웃음소리, 아버지의 땀 냄새 배인 지게, 한복과 갓을 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댓돌에 가지런히 놓인 흰 고무신. 크래용으로 막 그린 그림일기처럼 눈앞에 선하다. 해 질 녘 바다에 울려 퍼지던 뱃고동 소리까지, 지금도 가슴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른다.
그곳은 흘러가다 잠시 쉴 수 있는 안식처다. 도시의 풍경은 화려하지만, 늘 콘크리트 속에 갇혀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흙냄새와 바다의 짠 내음을 그리워하며,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 잠시 숨을 고른다. 불어오는 짠 내음은 회색 도시의 시련 속에서도 나를 붙잡아주는 굳건한 뿌리였다.
바닷가 마을을 그리워한 건 단순히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그때의 따뜻한 온기와 정을 되찾는 일이다. 시골을 꿈꾸는 것은 결국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쉬어가고픈 삶 속에서 다시 꿈꾸는 나를 발견하는 바람이다.
언젠가 이 회색 도시를 벗어나 다시 흙을 밟으며, 마음속 봄날을 꺼내 새로운 희망을 심고 싶다. 시골을 그리워하는 일은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며, 잃지 말아야 할 순수한 숨결이다. 돌아갈 수 없지만 언제든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고향, 그곳이 바로 푸른 바닷가 마을이다.
굽이 산길을 한 줄로 서서 학교를 다녔고, 새마을 운동으로 신작로가 생겨 버스가 지나다니면 손을 흔들어 외지인을 맞이하던 동심이 있던 곳. 바람처럼 강하게 자란 사람들은 선창에서, 갱번(바닷가)에서 그렇게 어머니 같은 품을 배웠다.
빽빽한 도시의 삶, 무수히 바쁜 사람들. 회색 도시는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모두 자기를 위해 움직이고, 작은 틈이 보이면 그 틈을 차지하려 애쓴다. 새로운 사람이 집단에 들어오면, 상처에 균이 퍼지듯 우르르 모여 둘러싸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의 여유를 내어주며 살 수는 없을까.
결국 이 세상에 남겨지는 건 우리가 나눈 따뜻한 마음뿐이다."
(에필로그)
푸른 바닷가 마을은 내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면서도, 여전히 내 안에서 파도처럼 살아 숨 쉬는 고향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만든 뿌리이자 내일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그곳에서 배운 웃음과 눈물이 등불이 되어, 이 회색 도시 속에서도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합니다.
이 연재를 시작한 것도, 어쩌면 저와 같은 질문을 품고 계신 분들,
혹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과 공감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긴 시간 동안 부족한 제 글에 마음을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