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오줌 누고 싶었던 날

고백

by 정온

서서 오줌 누고 싶었던 꼬마의 기억 일기를 불러내봅니다.


국민학교를 7살에 갔으니

아마도 다섯 살쯤이었을 겁니다.

바닷가 마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달리,

우리 집은 산만댕이 아래 딱 세 채가 모여 있었죠.


집집마다 자식이 대여섯은 기본이던 시절,

딸 부잣집은 여덟, 아홉까지 북적였고

마을은 온통 아이들 노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 먹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며 전쟁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해는 서편으로 저뭅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엄마들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스윽 훑고 지나가면


해를 덮은 회색빛 산 그림자 아래

삐걱,

부엌문 안의 공기는

마치 뿌연 안갯속, 미로 같았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맨 엄마가

젖은 행주를 돌돌 말아

뜨거운 무쇠솥을 열어재끼면


고소한 밥 냄새가

위장을 자극하던 저녁이었습니다.


아이들 밥그릇엔 보리가 반이었지만

할아버지 밥그릇엔 반지르르한 쌀밥이

가득했습니다.

어린 손주들이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입맛 다시는 광경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꼭 쌀밥을 조금 남겨주셨지요.


그 쌀밥의 황홀한 맛을 어찌 잊을까요.

밤이면 할아버지 수염을 머리 땋듯 땋으며 듣던

옛날이야기는 또 얼마나 달콤했는지요.


사건은 어느 화창한 날입니다.

온 천지를 뛰어놀던 남자애들이

아무 곳에서나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는 모습이

괜히 멋져 보였습니다.


그날,

아무도 없는 대문 앞 작은 골목에서

두근거리는 용기를 내어

집 아래 논을 향해 바지를 내리고

서서 오줌을 누었죠.


남자애들처럼

배를 앞으로 쭈욱 내밀었습니다.


시원한 기분도 잠시,

결과는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축축하게 젖어버린 바지와 신발,

동네 남자애들 흉내를 내다

결국 엄마의 손바닥이

아주 맹꽁이 여자애 등짝에서

찰싹, 파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의 생생한 공기와 쌀밥 냄새,

그리고 젖은 바지의 민망함이

오늘 손주를 볼 나이가 되어서야

볏짚단 같은 구수한 추억으로 피어오릅니다.


한동안 서서 오줌 누고 싶다는 자유의 생각을

잊지 못했던 그 어린 날의 마음은

어쩌면 세상의 틀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작은 돌멩이 같은

반항이자 자유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규리 님의 「서서 오줌 누고 싶다」를 읽는 순간,

그때 그랬지,

나는 참 엉뚱하기도 했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잠자던 생각을

글로 스케치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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