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지 다녀온 언니의 서울말
어느 날, 도회지에서 돌아온 언니가 말했다.
“서울 가면 말이야,
콩나물 사고 ‘봉다리 주세요’ 이러면 못 알아들어.
‘봉지 하나 주세요’ 해야 돼.”
그땐 몰랐다.
‘봉다리’를 왜 못 알아듣는다는 건지,
그게 뭐가 어색한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콩나물을 500원어치를 사고
오백 원 잔돈을 받을 때도
“주리 주세요.” 하면
그 말도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알았지?"
언니의 말에
우리는 배꼽 잡고 깔깔 웃으며
나름 서울말 연습에 한창이었다.
“시골에서는 주리 주시다, 잔돈 주이소~”
“봉다리 주이소~”
그리고 드디어,
내가 처음 서울에 간 날이었다.
숭인동 골목시장.
콩나물 500원어치를 사고,
‘서울말’을 써야겠다고 큰 맘을 먹었다.
촌에서 온 줄 모르게 말해보려고
나름 애써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투리와 성조였다.
“많이 파세예~”
서울 사람 흉내는 냈지만,
목소리 어딘가에서
자꾸 고향 발음이 새어 나왔다.
그땐 왜 그렇게
서울 사람이 돼보려고 애썼을까.
서울말을 따라 하며
배꼽 잡고 웃던 그 시절.
그 말투 안에는
시골의 향기, 고향의 냄새,
그리고 우리의 웃음과
유연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63 빌딩 옆을
택시 타고 지나다가,
언니가 손짓하며 말했다.
"저기, 63 빌딩ㅡ 서울에서 제일 높아."
진짜?
너무 신기한 나머지
창문 쪽으로 고개를 푹 숙여 쳐다봤다.
그러자 언니가
내 팔을 살짝 꼬집고는 수줍게 잡아당겼다.
"창피하다고..."
"야, 서울에서는 시골 사람처럼 보이면 안 돼."
뭐 그래...
언니는 촌티 줄줄 흐르던 나를 보며,
괜히 혼자 얼굴이 발그레졌다.
돌이켜보면,
서울 구경 나선 내 모습은
누가 봐도 갓 상경한 시골 학생이었다.
지난 사진 속엔
시골티가 줄줄 흐르는 내가
수줍게 서 있었다.
모든 게... 참.
시골 시골했지.
그때 그 시절이
흑백 필름처럼 스친다.
문득 떠오른 말투 하나에,
시골 냄새 그윽한 옛날이야기가
뻥튀기 아저씨 "뻥이요!" 외치던 날처럼––
“뻥!” 하고
내 귀에 와서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