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현관을 열면 보이는 투명한 중문 유리 너머에 검은색이 한 방울 섞인 딥 그린 색의 미닫이문이 있다. 아래로 보면 그린 에메랄드 빛의 현관 타일이 보인다.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가면 초록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다. 80개의 식물과 10개월 된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
아기를 낳고 100일 동안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치우며 생각한 것은 이 정도로 소모적이고 헌신적이 일들이 과연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분명 아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아기와 관련되지 않은 자아도 크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단지 한 생명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아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잘 키울 수 있다고 착각했다. 조카들을 잠깐씩 보는 것과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있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남의 자식의 성장은 타인의 임신기간, 군대, 재수처럼 쏜살같이 지나갔고, 내 자식을 돌보는 하루는 거북이처럼 느렸다.
‘온실효과’라는 단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식물을 접하기 전에는 환경을 해치고, 지구를 녹여 해수면을 높이는 위험한 단어였다.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가 된 이후에 온실이라는 단어는 식물을 폭풍 성장시킬 수 있는 고마운 단어로 변했다. 하나의 세계를 접하면, 다른 의미가 펼쳐진다. 몰랐던 세계는 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온실에서 식물은 스스로도 성장했고 나를 확장시켜 주었다.
80개의 식물과 10개월 된 아기, 그리고 그 둘을 통해 또 다른 자아인 나도 자라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