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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화원 Oct 24. 2021

프롤로그. 자라나고 있습니다


초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현관을 열면 보이는 투명한 중문 유리 너머에 검은색이  방울 섞인  그린 색의 미닫이문이 있다. 아래로 보면 그린 에메랄드 빛의 현관 타일이 보인다.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가면 초록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다. 80개의 식물과 10개월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


아기를 낳고 100일 동안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치우며 생각한 것은 이 정도로 소모적이고 헌신적이 일들이 과연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분명 아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아기와 관련되지 않은 자아도 크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단지 한 생명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아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잘 키울 수 있다고 착각했다. 조카들을 잠깐씩 보는 것과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있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남의 자식의 성장은 타인의 임신기간, 군대, 재수처럼 쏜살같이 지나갔고, 내 자식을 돌보는 하루는 거북이처럼 느렸다.


‘온실효과’라는 단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식물을 접하기 전에는 환경을 해치고, 지구를 녹여 해수면을 높이는 위험한 단어였다.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가 된 이후에 온실이라는 단어는 식물을 폭풍 성장시킬 수 있는 고마운 단어로 변했다. 하나의 세계를 접하면, 다른 의미가 펼쳐진다. 몰랐던 세계는 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온실에서 식물은 스스로도 성장했고 나를 확장시켜 주었다.


80개의 식물과 10개월 된 아기, 그리고 그 둘을 통해 또 다른 자아인 나도 자라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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