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대견할 때가 있다. 바로 새순을 내어줄 때이다. 잎 한 장 또는 줄기 토막 만으로 시작하는 식물들은 ‘순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순화는 ‘적응’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된다. 다른 곳에 살았던 식물이 장소가 바뀌고 적응기간을 거치는 것이다. 원래 살고 있던 곳의 온도와 습도, 바람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달라지니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적응에 실패한 식물들은 뿌리 또는 줄기가 무르거나, 잎이 쳐지거나 타들어간다.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는 ‘얼음땡’ 같은 좀비 상태로 몇 달씩 조화처럼 있기도 한다. 그때만큼 식집사가 애가 타는 시간이 없다. 햇빛이 더 좋은 자리에도 놔둬보고, 밤에는 스티로폼에 넣어 따뜻하게 옮겨도 보고 온실에 넣어도 본다. 한참을 매일 살펴보지만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있다.
일명 ‘감자’라고 불리는 스테파니아 에렉타가 그런 경우였다. 넓적하고 동글하며 표면이 울퉁불퉁한 괴근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괴근에는 낙타의 혹처럼 영양분을 가지고 있다가 따뜻한 날이 되면 새순을 뽑아주는 아프리카 식물이었다. 아직은 따뜻하지 않은 4월에 데리고 와서 그런지 묵묵부답인 감자였다.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을 감자 위에 뒤집어 놓으면 온실효과를 낼 수 있어 습도 유지가 된다고 했다. 에렉타는 자생지인 아프리카는 덥기만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베란다에서 방 안으로 들였다. 과한 집사의 관심이 독이 되었을까. 에렉타의 괴근 표면에 하얀색의 점들이 보였다. 곰팡이가 핀 것이다. 부랴부랴 심폐소생술을 해주었지만, 감자는 초록별로 가고 말았다.
초록별로 감자가 가면서 감자 농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꼭 한 번은 잎을 보고 싶었다. 화원에 갈 때마다 감자 코너에 가서 동그란 괴근을 가진 감자를 둘러보았다. 에렉타는 잎이 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예 잎이나 줄기가 나와있는 식물을 고르는 게 성격 급한 식집사에게는 좋다. 드디어 잎이 나있고 마음에 드는 에렉타를 발견했다. 집으로 데려온 지 얼마 안 되고, 그 잎은 말라 떨어져 버렸다. 몇 주를 기다리고서야 가자미 눈으로 보이는 연둣빛의 점 같은 걸 발견했다. 새순이었다. 새순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식물의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아 기특하다.
아기가 4개월이 되자, 소아과 선생님은 이유식 시작을 이야기했다. 4개월밖에 안됐는데 벌써 밥 비슷한 걸 먹는다니. 미음으로 시작해서 완료기를 지나 어른들이 먹을 수 있는 밥까지 가는데 8개월 정도 걸린다. 처음 몇 주간 이유식을 줄 때마다 그대로 턱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기도 액체 형태의 분유만 먹다가 유동식을 하려니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을 주는 대로 흘러내리다가 곧 몇 번씩 맛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익숙하지 않은지 짜증을 내기도 했다. “쉬운 맘마 줄게” 라며 우유를 황급히 타 와 먹이곤 했다.
분유와 이유식을 같이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잇몸에 하얀 것이 보였다. 밥 비슷한 걸 먹는다고 벌써 이가 나려고 하는 줄 알고 신기했다. 진주종이라는 입안의 단백질들이 쌓여 생기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정말로 이 같은 하얀색이 보였다. 에렉타에서 보이던 연둣빛의 새순의 반가움을 아기 잇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도 나는 순서가 있었다. 토끼 같이 아랫니 2개 먼저 나고 그다음 윗니 2개에 다시 윗니 2개가 추가됐다. 마치 좀 더 큰 덩어리를 잘 씹을 수 있도록 이들도 보조를 맞추는 것 같다. 아이의 성장도 음식에 따라 적응하고 있었다. 식물의 새순처럼 이 하나씩 날 때마다 아기를 있는 힘껏 기다리고 응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