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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화원 Oct 24. 2021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소우주

t e r r a r i u m

전혀 관심도 없던 것들이 마음속으로 숙 들어와 박힐 때가 있다. 그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연예인이 눈에 들어와 기사를 일일이 찾아보게 된다거나,  집에 같은 기능을 하는 가구가 있지만 딱 그 브랜드의 가구가 마음에 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식물을 어떤 흙에 심고 어떤 비료를 언제 사용해야 하고 벌레들을 퇴치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가드닝 클래스를 두 달에 걸쳐 들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시간에는 집 모양의 투명 유리 화기에 흙을 붓고 돌과 이끼를 이리저리 배치하는 테라리움 수업을 듣고는 테라리움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렸다.


테라리움 정규수업은 10시에 시작해서 점심을 지나 5시나 되어야 마쳤다. 일주일에 하루 7시간은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었다. 친정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머릿속에 잠시 제쳐뒀다. 조그마한 투명 용기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것처럼 보이는 식물과 이끼 돌들을 핀셋으로 요리조리 넣어보며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완성품을 보자면 간단해 보이던 작업이 실제로 하려고 하니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돌과 이끼를 놔둬야 자연스러운 구성이 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서일까. 자연물인 돌이 제일 까다로웠다. 돌을 뒤집어도 보고 엎어도 보고 돌이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면을 찾는다. 돌과 이끼는 자연물이라 비슷한 모양을 한 것은 있어도 하나하나 똑같은 돌과 이끼는 세상에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쌍둥이도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이 생길 수는 있지만 성정이 다르다. 같은 종의 돌과 이끼를 사용해 만들지만,  만든 사람에 따라 각각의 빛을 내고 있었다.


피규어는 테라리움의 핵심 중 하나다. 손톱만 한 피규어를 마지막에 장식하고 나면, 돌과 이끼로만 이루어져 있는 작은 자연에 이야기가 입혀진다. 처음 만들었던 테라리움에는 하얀 말과 갈색 말 피규어가 올라갔다. 피규어를 올리고 나니, 그냥 돌과 이끼에서 말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제주도의 한 방목 농장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래서일까 보면 볼수록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테라리움이었다.


테라리움을 오래 보기 위해서는 관리가 중요한데, 온도와 습도를 잘 유지해 주어야 한다. 너무 추워서도 안되고 더워서도 안 되는 15 -24도 사이의 적절한 온도와 6-70%의 습도가 필요하다. 과하게 덥고 습도가 높으면 용기 안에 곰팡이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춥고 건조하면 식물들이 말라버린다. 어느 정도의 자정능력은 있지만 급격한 환경에는 살아남지 못한다.


아기도 비슷하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엄마와 아빠의 그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잘 성장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다. 계속 들여다본다고 1mm씩 자라고 있는 게 눈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이가 잘 때마다 눈 감은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꼼꼼한 관찰로 손톱 길이를 체크하고, 추워하지는 않는지, 콧구멍에 코딱지가 가득 찬 건 아닌지 이리저리 살펴본다. 세상에 나오게 해 줬다고 환경을 만들어준 뒤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건 아니다. 테라리움처럼 환경이 변하진 않았는지, 이끼가 마르진 않았는지 들여다보고 보살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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