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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Mar 29. 2024

공론화 알고리즘

창비 편집부, 『창작과비평 봄호 2024』


  내가 아는 어떤 영화 속 인물은 나와 매우 비슷하다.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나’를 영화로 고스란히 옮겨온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 인물은 <김종욱찾기> 속 서지우다.


  서지우의 가장 큰 특징은 ‘마지막’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두과자를 먹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여행을 떠날 때에도. 대체로 마지막까지 먹지 않고, 보지 않고, 가지 않는다. 끝까지 갔을 때의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일정량의 회피 성향이 ‘서지우’로 하여금 오래도록 자신의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게끔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를 실제로 보러 가는 것이 두렵다. 대화조차 나누고 싶지 않다. 작가뿐만이 아니라, 내게서 사랑하는 마음이 발굴되는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좋아하는 건 끝을 보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스로 그것을 인지한 순간 신경을 슬슬 그슬리듯 괴롭혀버릴까 싶다가도 그러지 않는 쪽을 택하기로 결론짓는다. 이것은 지금의 어쩔 수 없는 나다. 이것이 최선이라고 나는 직관한다.


  문예지 <창작과비평>에 실린 텍스트를 읽으며 나는 ‘이후의 시절’에 대해 생각했다. 수록된 작품 중 성해나 작가의 ‘길티클럽 : 호랑이 만지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주요 인물인 ‘나’는 ‘김곤’이라는 어느 영화감독의 팬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 감독이 만든 콘텐츠가 아닌, 그 감독 자체를 덕질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정도다. ‘나’는 김곤의 작품을 보고 압도되는 느낌, 전율을 경험한 이후로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그가 촬영 현장에서 범죄에 성립되지는 않으나 윤리적이지 못한 환경을 조성했을 때에도 그것을 인간으로서 ‘실수’로 인식한다. 그를 이해하고, 용서한 것이다.


  ‘나’의 눈을 통해 ‘김곤’이 이후에 보여지는 행동과, 팬덤 내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은 실은 중요하지 않다. 서사를 메우고 있는 사건과 장면들은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김곤’이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었으니까.”(p.230) 여기서 다른 문장은 필요 없다. 이 소설에서 남는 것은 하나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


  최근에 나는 위선에 대해 생각했다. 단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사정을 봐줘가며 기회를 주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실수를 할 수 있고, 미성숙한 결정과 판단에 대해 너그럽게 용서를 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너그러워질수록 이해받는 사람의 세계는 만만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폭력을 경험하게 되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래서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한다. 내가 과시하기 위해 괄시한 선택이 얼마나 세심하지 못한 것이었는지 말이다.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김곤'의 팬들이 '동조자'라면 나는 때로 방관자이자 위선자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순수한 척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거짓된 액션도 생겨나는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순간 때로는 규칙적이지 못하고 비정형성의 세계에 서로를 놓아두게 되는 것 같다. '김곤'의 팬이 공론화를 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김곤'은 공론화 되었을 것이다. 김곤의 문제의식은 이미 그 스스로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응징을 당하는 쪽은 더 불안한 쪽이라고 생각한다. '김곤'이 저들의 팬에게 '사랑' 받음으로써, '이해' 받음으로써, 스스로 죄를 뉘우치므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까? '김곤'은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까? 오늘의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 창비(@changbi_insta, @magazine.changbi)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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