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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ul 11. 2024

막내는 끝내 배신을 선택한다

#광주오아시타호스텔

분명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동명동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분명 어제 먹었던 크레페 집 맞은편에 있던 타코야끼를 먹겠다고 줄을 서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길이 어딘지 모르겠다. 내 기억이 맞다면 타코야끼 집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앞에는 유명 체인점이기도 한 라멘집이 나와야 하는데… 눈앞에는 온통 모르는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밤의 거리는 시끌벅적하다. 얼굴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는다.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걸 잃어버렸다는 공포감이 몸을 휘감는다. 춥다. 배고프다. 그리고 피곤하다.


 

  “여긴 왜 왔어요?”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잃은 채 무릎을 모으고 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사람이다. 어, 그쪽이야 말로 어떻게 여기에… 아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봤구나. 보고 왔구나. 아님, 또 나 혼내려고 왔나? 왜 하필 광주에 왔느냐고, 누굴 놀리고 싶은 거냐고? 나는 대답 대신 내게 손을 뻗는 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다.


  “그래요. 괜히 거슬리게 해주고 싶어서 내가 판을 좀 짰어요. 일부러 골려주려고요. 나를 놀려 먹은 만큼 당신도 한 번 당해보시라, 퍽 곤란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괴롭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내 말에 그 사람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는데 그 사람은 자꾸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피곤 했다. 시끌벅적한 식당이든, 고요한 카페든. 몇 번의 목격으로 인해 나는 그 사람이 생각보다 주변의 시선을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시선에는 겉치레적인 가식과 허세가 함께 한다는 것도. 그 사람이 내게 무어라 말할 것처럼 내 머리 위로 손을 뻗는다. 그 순간 귀에 사이렌이라도 달린 것처럼 크게 웅웅 거리더니 몸을 꼼짝할 수 없이 움직일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아, 나 지금 꿈꾸고 있구나. 나 가위에 눌린 거야.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평소에도 가위는 자주 눌리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가위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방 안은 아직 어둠. 새벽이구나. 고요함 속에 새 몇 마리가 푸드득하고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똑딱이는 시계의 초침소리도. 뚝뚝 수돗가의 물이 흐르는 소리마저도. (나는 꽤 귀가 밝은 편이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새벽 다섯 시. 옆 침대를 보니 선엽과 정원은 한창 꿈나라에 가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려 눕다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불을 켜고는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쓰다만 소설을 이어보겠다고 키보드를 몇 번 끄적거리다 창 밖의 어스름한 새벽 풍경을 바라보았다. 거리는 아직 고요했다. 평소였다면 여섯 시쯤 일어나는 게 맞았지만 이렇게나 일찍 일어난다는 건 오늘도 비가 올 것임을 내 몸이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은 무등산을 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지난 제주여행 때에도 비가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한라산을 끝까지 오르지 못해 걱정이 되었다. 선엽과 정원에게는 국립공원을 가는 거라고 했지만 실은 등산. 산에 오르는 시간에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비교적 이른 시간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게 좋았다. 그나저나 꿈 한 번 되게 생생하네. 나는 괜히 한 번 정수리부터 뒷목까지 쓸어내리고는 어깨를 툭툭 털었다.



  오전 아홉 시. 넷플릭스 한 편을 보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를 빽 질렀다. 정원이었다. 왜? 이어 선엽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정원의 비명을 듣지 못한 척했다. 뻔하지, 뭐. 벌레 나왔거나 수건을 안 가져왔거나 그런 거겠지.


  “야, 해준이가 나 부담스럽다는데?”


  그러나 뜻밖의 대답에 나는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일으켜 정원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선엽도 정원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실은 어제 내가 보냈거든.”

  “뭘?”

  “보고 싶다고.”


  정원이 우리에게 카톡 대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봐. 이거 봐. 여기서 일상 대화하다가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라고 하다가. 그러다 어제 그냥 나는 ‘보고 싶어’라고 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이러더니 이런 건 좀 부담스럽다고 그러잖아. 정원은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선엽이 정원의 휴대폰을 뺏다시피 하며 찬찬히 읽어갔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옆에 있던 다 식은 맥주캔을 들어마셨다.



  “야, 헤어져. 그런 놈이 뭐가 좋다고.”

  “야, 선엽아. 우리 등산할 건데…“

  “민주. 넌 가만히 있어봐. 지금 등산이 중요해?”

  “아니, 보고 싶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라며. 나 어떡해? 나 얘 아니면 안 돼.”

  “세상에 남자가 얘 하나냐? 이런 무드 없고 눈치코치빠치도 없는 애는 만나지 마라. 너만 계속 마음 고생 하잖아.”

  “아니야. 둘이 있을 때는 얘도 나한테 애정표현 많이 해.”

  “뭐, 스킨십?”

  “… 그래.”

  “야, 이제야 툭 까놓고 말하는 건데 나는 신해준 걔가 너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

  “얘들아. 일단 우리 다음 스케줄이 있으니까. 버스를 놓치면 안 되거든.”

  “야, 곽민주. 너는 그럼 혼자 가던가. 지금 그게 중요해?”

  “조식도 30분 남았…”



  정원은 상황 너무 짜증난다며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곧 샤워기의 물 틀어놓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선엽이 한숨을 푹 쉬며 주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 방 안의 먼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임정원이 신해준을 좋아하는 것만큼 신해준이 임정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요지 아니야? 무엇보다 정원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전날 정원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늦은 밤이었다. 해준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다고 이야기를 했고, 각자의 일상을 보내면 되는 거다. 그런데 왜? 굳이 연락을 받아야 하나? 전날 선엽이 정원에게 주었던 피드백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그 정도로 불안할 일인가 싶기도 했고.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을 수 있나 싶기도 했다. 고작 2박 3일 떨어져 있는 거잖아.


  숙소 안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정원이 부은 눈으로 샤워를 마치고 나와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그러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은 자꾸만 바닥 위에 뚝뚝 물을 흘렸다. 그 사이 선엽도 조식을 먹고 올라왔다. 선엽의 입가에는 토스트의 기름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이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두 사람을 기다렸다. 선엽이 정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손에 든 우유와 시리얼을 내밀었다.


  “이거 먹고. 일단 진정하자.”

  “또 헤어지면 어떡해?“

  “그렇지 않아. 걔 딴에는 네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됐잖아. 서울 올라가서 다시 얘기해 봐.”

  “우리 벌써 세 번은 헤어졌었단 말이야.”

  “원래 초반에 많이 싸워.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한 거잖아.”

  “우린 안 맞아. 그걸 서로 알고 있어. 해준이도, 나도. 그래서 우린 자꾸만 서로에게 서로를 맞추게 하려고 해. 주로 내가 맞춰 줘. 그것도 나는 싫어.”

  “그럼 헤어져. 세상에 남자는 많고 많다.”

 

  마지막 말은 내가 했다. 헤어지는 게 뭐가 어려워?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사랑을 이렇게 고통받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말에 동시에 두 사람이 나를 째려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느냐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솔직히 신해준. 뭘 모르는 내가 봤을 때도 별로야. 근데 굳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미래를 생각해도 답도 안 나오잖아. 니네 싸우는 얘기 들어보면 죄다 신해준이 잘못한 게 맞는데 네가 잘못했다고 고개 숙이고 있고. 안 맞는데 왜 굳이 걔랑 연애를 해야 하냐고. 내가 소개시켜 줄게. 더 좋은 사람.”


  내 말에 선엽이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정원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메이크업을 하기 시작했다. 선크림을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찍어 바른다. 눈썹을 그리고……


  “나를 감당하는 앤 걔 밖에 없어.
그래서 난 걔랑 더 만나야겠어.”


  정원의 말에 또다시 침묵과 정적. 나는 생각에 빠졌다. 감당한다는 거. 감당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떤 걸까. 좀처럼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만을 마주하다 나를 감당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거. 정원은 해준을 사랑하는 감정보다 자신을 감당해 줄 수 있어 그 애를 계속 보고 싶다고 했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감당한다’는 그 한 마디에 나는 어쩐지 정원이 부러웠다.



  나 역시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친구와 연인 사이. 한때 나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순수하게 친구로 연락을 해왔던 이성들을 그저 방어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며 경계했던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잘 몰라서 내게 관심이 있다고, 나를 좋아한다고 오해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게 관심이 있다고, 그것이 장난감을 다루는 듯한 호기심이 아닌 이성으로서의 관심이라고 나는 으레 착각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의 친구와 심지어는 이성 친구들에게까지 내가 겪었던 일련의 일들-은 여기에 기재하고 싶지 않다-묻고 또 물었는데 모두들 ‘호감이 맞다고 말을 해주길래 단단히 오해를 했었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부터 직접 ’이성적인 호감이 없다 ‘는 말을 들었을 때 흥미가 떨어졌으니 괜히 발을 빼는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좋을 텐데 상황을 수습하지 않고 회피하는 거라고,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열이 부글부글 끓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 내게 호기심이 생겼다‘는 표현에는 인간적으로 묘한 수치심이 들기도 했다. 두고두고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되갚아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지!



  막내는 끝내 배신을 선택한다. 내가 막내를 만나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막내는 시작은 제멋대로면서 마무리를 짓지 못해 상황을 회피하거나 도망가버리곤 한다. 혹은 어쭙잖은 변명을 해대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어쩔 수 없었다‘ 혹은 자신만의 정당한 이유를 대가며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둘러대곤 한다. 가족들도 모두 막내, 회사에서도 모두 막내인 환경에서 업무를 하며 자연스레 ‘막내’ 또는 ‘동생’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업무상 실수를 해놓고 자신은 그런 기억이 없다며 발뺌하던 어느 막내는 내가 구체적인 데이터를 자료화하여 제시하자 입을 다물었다. 몰래 서랍 속 젤리를 훔쳐 먹어 놓고는 발뺌하던 다른 막내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설치한 간이 CCTV(휴대폰 카메라+삼각대)를 보여주자 주머니에서 코 묻은 돈을 꺼냈고, 그마저도 어른 막내에 의해 ‘네가 양보하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그 외에도 학교에서 팀 과제를 하며, 대외활동을 하며 만난 막내들을 보면서 나는 막내들을 적절히 응징하는 방법도 배웠다. 내가 막내를 응징하는 방법은 모든 것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개의 계절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배신’을 했던 사람이 나였는지, 그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당시 나는 그 사람이 먼저 나를 배신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솔직하지 못했던 쪽도, 그 사람을 공격하려 했던 쪽도 모두 나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러 번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그 사람이 그런 내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은연중의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사람이 내게 잘 못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결국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똑같이 못됐고, 못났고, 별로인 사람이었던 거야.


  “일단 가자. 벌써 10시가 되어간다. 호수 보러 가야지.”


  어느새 틴트까지 바른 정원이 입술을 오므리며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선엽은 계속 생각에 빠진 듯했다. 나 역시 왠지 모를 우울감에 기운이 쭉 빠졌다. 그래. 광주호 가보자. 호수에 다 묻어버리자. 운동화를 신고, 가방끈을 다시 한 번 고쳐 메는데 금세 하늘이 어둑어둑 해졌다. 그와 반대로 정원은 다시 해준에게 연락이 왔다며,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사이가 금세 풀렸다며 좋아라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후드득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등성이를 오르던 버스는 덜컹대며 빗길을 달렸고, 우리는 철 지난 아이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호수로 향했다. 호수로 들어가려면 산속 깊은 곳까지 도달해야 했다. 2시간에 1대 올까 말까 한 버스를 타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열어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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