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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ul 10. 2024

착한 거짓말 연습

#독립서점


나에게 “감정”이란 모래성과 같다. 밀려오는 파도에 언제 쓸려가버려도,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공들여 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있잖아, 파도가 밀려올 땐 뒷걸음질을 쳐야 하는 거야. 몸을 낮추고, 파도가 덮쳐오지 못하는 방향으로 멀리 달려가야 하는 거야.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일침을 가하듯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쉽게 포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그럽게 져주는 것이었다. 피로가 가늠되는 상황에서 무심해지는 것은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다. 오래도록 그렇게 물빛 파도에 넋을 잃은 사람들의 옷깃을 붙잡고 끌어내오기 바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끔찍한 동생들은 그런 식으로 ‘나’라는 방패를 눕힌 채 파도 앞에서 멋진 서퍼가 되기 바빴다.



착한 아이 증후군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동의하지 않으면서 동의하는 척,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관계에 균열이 가려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쉽게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마치 피하지 못하는 파도 앞에서 태세를 전환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예정대로라면 숙소에서 쭉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동명동 거리의 잔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쾌함이 묻어 있는 거리의 풍경에 매혹된 우리는 동네를 쭉 둘러보기로 했다. 동명동에 대한 정보는 숙소 주변, 그리고 둘러볼 예정이었던 명소의 근처라는 것뿐 그 외에는 별 특색이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동명동 거리를 비추는 불빛은 어딘지 모르게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신비한 요술상점이 즐비해 있는 상점가 골목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골목을 돌 때마다 머리를 틀어 올린 할머니가 나타나 양손에 든 주머니를 내 보이며 한 가지를 골라보라고 할 것 같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신기한 마음으로 하나를 고르면 사랑의 묘약이 뿅 하고 손에 쥐어질 것 같은 그런 인상 말이다.


옹기종기 주택가가 모여 있는 동네에는 소품샵과 베이커리, 카페와 책방이 군데군데 있었고, 그 외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주민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걸으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학원가가 나오기도 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대부분 방문객들인 것 같았다. 붉은 조명으로 띠를 두른 거리를 지나 우리는 근처의 책방 몇 군데를 돌아보기로 했다. 책방 가보자고 한 건 순전히 내 아이디어였다. 정다운 동네에 방문하면 책방만큼 기억에 남은 곳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립서점으로 불리우는 책방에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다. 책방에는 귀여운 소품이나 필기류, 선물하기 좋은 기념품이나 맛 좋은 빵과 간식도 있다. 그뿐이랴, 규격화된 문고판 책들로 둘러싸인 대형서점과는 다르게 비교적 한정된 이야기가 모인 매대만 살펴봐도 책방 주인이 어떤 매력을 지닌 사람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큐레이션존과 스스로 책을 만들고 엮은 사람들의 시선과 손때가 묻어 있어 그들의 추억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 책방은 다정함을 파는 상점이기도 하다.



갑자기 옷을 챙겨 입고 숙소를 나온 것이기 때문에 책방 대부분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지도 앱을 켜고 운영시간을 보니 방문할 수 있는 책방은 총 세 곳 정도. 그마저도 1시간도 채 안되어 문을 닫을 것 같았다. 그냥 주변에 있는 펍이나 갈까. 찰나 고민했지만 다음날 일정을 고려하면 책방을 갈 수 있는 타이밍은 지금밖에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 보자. 문을 닫더라도.”


마음을 정했다는 듯한 내 말에 선엽과 정원이 알겠다며 킥킥 웃었다. 두 사람은 내가 여행지를 방문하면 책방을 꼭 들를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처음으로 방문한 책방은 ACC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책과 생활”로, 2층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입구부터 귀여운 화분과 나뭇결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칸칸이 방 같은 책과 군데군데 소규모 책자들이 귀여운 기념품처럼 매달려 있는 듯한 모양새도. 우리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아이들처럼 연신 귀엽다는 말을 반복하며 책방을 구경하기 바빴다. 특히나 작가들의 귀여운 일러스트가 담긴 엽서를 하나씩 고르는 묘미도 있었다. 선물하기 딱 좋겠다! 우리는 수신자가 정해지지 않은 편지를 쓰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무렵, 나는 독립출판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사랑을 떠올리며 제주여행을 하는 콘텐츠였는데, 브런치북에 연재 중이던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에 입고되어 수익까지 직접 해보는 것이 목표였다. 여행을 떠날 즈음엔 어떻게 인연이 되어 알게 된 디자이너분께 원고를 넘긴 참이었다. 판형 위에 내가 쓴 글자가 입혀지고, 조금씩 책의 형태를 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내 책도 이제 이 서가 중에 하나에 배치되게 되겠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벅찬 일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책을 만들고 쓰는 일이 좋았다.



  “책과 생활”을 나와 다음으로 갔던 곳은 “꽃이 피다“. 거리에서 거리를 지나는 동안 길거리엔 음식점과 포장마차가 즐비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한 곳에 홀린 듯 걸음을 멈췄다. 누텔라와 생과일을 얹어 주는 크레페였는데 세상에, 여기에 푸딩까지 올라간단다. 비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천막 앞에 옹기종기 모여, 천막 밖으로 밀려 나 있는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가게 앞에 모여 있었다. 단순히 관광객으로만 보이지도 않았다. 주민들도 맛보고 싶어 줄을 서는 곳. 정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거 먹고 가지 않을래?”


  정원이 불쑥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생각해 보니 달콤한 음식이 땡기기도 했고, 하루종일 실없이 걸어 다니느라 종아리가 뻐근하게 당겨 오기도 했다. 선엽 역시 더 걷는 것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저 달달하고 말랑한 크레페를 꼭 먹고 싶은 듯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예정이었던 서점까지는 1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다녀오겠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고민하지 않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이 표정 밖으로 드러났는지 선엽이 서점 갈까? 하고 다시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진짜 괜찮아? 선엽이 재차 물었고 나는 내일 또 가면 되지 않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놓고 나니 정말 혼자라도 다녀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했던 것에 다 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사실 별 게 아닌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인 거다. 세웠던 하루의 할 일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데) 달성하지 못하면 속상해지는 사람. 풀이 죽는 사람. 그러나 진짜 별 게 아닌 일이므로 놔두면 금방 괜찮아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 역시 크레페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이면 금방 먹을 것 같았던 크레페 집 앞에서 우리는 장장 30분을 기다렸다. 주변의 가게들이 하나씩 조명을 꺼트렸고, 그 뒤를 이은 줄은 끊어질 줄을 몰랐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앞의 주문 건에 오류가 생겨 두세 명의 직원들은 허둥지둥하며 주문서를 확인하기 바빴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근처의 카페나 소품샵을 잠깐 구경하기도 했는데 어쩐지 무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유명 맛집이라 하더라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편은 되지 못하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1시간이면 동네를 더 둘러볼 수 있는데, 언제 또다시 올지 모르는데…!



  와장창 수다를 떨던 선엽과 정원도 지루한 듯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구름을 찢고 쏟아지던 비를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정원은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시계를 보니 아홉 시. 지금쯤이면 정원이 단톡방에서도 사라질 시간이었다. 남자친구인 신해준과의 통화 타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정원이는 전화는커녕 시무룩한 얼굴로 빗물 묻은 타일 바닥 위에 주저앉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선엽과 내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선엽이 정원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너, 오늘은 해준이 무슨 일 있어? 지금쯤이면 전화할 시간 아니야?”

  “됐어. 무슨, 우리가 맨날.”

  “왜 그래, 또. 크레페 잘 기다리고 있다가.”

  “뭐가.”

  “뭐야, 왜 짜증이야.”

  “난 가만히 있었는데 니가 괜히 물으니까 그렇지.“

  “뭐라는 거야. 그냥 물어본 거야.”

  “아, 됐어. 다 필요 없어.”


  정원이 투덜거리다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는 주저앉은 채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원을 바라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줄을 선 채 시끌벅적하던 무리들이 모두 정원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야,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왜 그래. 내 물음에 선엽이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왜, 신해준한테 애타는 게 속상해서?”

  “…….어. 진짜 별로야, 이런 기분. 괜히 의심병 도져 있는 거. 나만 불안해하는 거.”


  정원이 또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휴대폰엔 신해준과 임정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새로운 알람은 없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연락되다가 안 되면 보고 싶고,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그 정도로 네 마음이 그렇다고. 말 못 할 게 뭐 있어.”

  “예민하게 볼까 봐 그러지.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 집착 심하다고 할까 봐.”

  “오늘 걔 뭐 하는데?”

  “친구들이랑. 술.”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괜히 우산 앞코로 아스팔트를 콕콕 찍었다. 선엽의 말이 맞다. 신해준에게 굳이 거짓말할 필요 있어? 답답하기는.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관계가 쉬이 깨어질까 두려워 거짓말을 할 때가.. 갈등의 끝이 옳든, 그르든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저 이 대치 상황만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그 친구에게도 그런 적이 있다. 아니, 그 친구뿐만이 아닌 어쩌면 나는 그동안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버림받는다’는 감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눈치가 빠르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파악하는 편이기에 아는 것을 새까맣게 모르는 척할 수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내 잘못으로 돌리며 상황을 무마하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우리 집 막내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양보를 미덕으로, 포기가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던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무조건적으로 동생에게 양보하는 법을 가르쳤다.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그저 동생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동생은 나보다 고집이 센 편이었고, 나는 대체로 부모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었으니까. 부모님은 고집이 센 동생을 설득하는 것보단 조금 더 나약한 나에게 부탁하는 것을 덜 피로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십 년을 넘게 그런 패턴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중엔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관계를 맺는 모든 관계에서 쉽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수긍해주기도 하고, 싸움 자체를 회피하고 싶어 먼저 사과부터 하고 보는.



  착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거짓말이었다. 언젠가 어느 늦은 밤에, 내 사과에도 꿈쩍을 하지 않던 사람의 마음이 차갑게 변해버렸을까 봐, 경멸과 혐오의 눈빛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장문의 사과를 보내놓고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을 알면서도 얇게 덧입힌 관계가 깨어지는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원은 내게 왜 사과를 했느냐고 꾸짖으며, 다 필요 없고 먼저 전화를 걸라며 재촉했다. 자정쯤 되는 시간이었으므로 체육관과 집 사이 스무 개의 계단을 두고 오르락내리락하며 몇 번이고 고민했다. 옅은 눈이 내렸는데 우산 없이 눈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젖은 머리카락의 물기를 잡았다 놓으며 입을 비죽였다. 이 늦은 시간에 전화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 아니야? 잘 모르는 사람인데. 정원에게 이야기했으나 정원은 지금 전화를 하지 않으면 후회를 할 것이라며, 분명 그 사람은 네 전화를 받을 거고, 실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밤은 깊어가는데 나는 눈 내리는 꽁꽁 언 계단 앞에 엉덩이를 붙인 채 통화 버튼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평소 먼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거는 편도 아닌 데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정.말.엄.청.나.게.무.지.막.지.하.게. 망설였다. 그러다 이런 것도 못할 거면서 좋아하긴 뭘 좋아해! 하는 정원의 메시지 하나에 열이 받아 통화 버튼을 눌러 버렸다.



 수화음이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웃음소리. 그 순간 눈물이 또다시 펑하고 터져버렸다. 순간 안도감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덮쳐 마음속을 잠재우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콧물이며 눈물이며 보기 싫게 줄줄 흐르는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건조한 목소리로 사과를 전했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과의 목적과 내용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실오라기 같은 관계가 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뿐. 아마도 내 기억엔 “미안하다”는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얘기하자면 왜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미안하다고 했었던 것 같다. 왜 화를 내는지 정말 모르겠지만 그저 미안하다고. 그 순간 그 사람 역시 누군가의 “동생“이기에 끝끝내 나보다 고집이 센 편일 거라는 막연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내가 고개를 숙여야 끝나는 다툼이 계속될 거라는 예측. 그러니까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크게 갈등을 빚고 싶지 않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애써 합리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단 그냥 ”너그럽게 져준다 “라고만 생각했는지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막내이고, 동생이고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빚어낸 ”행동의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지금 내 앞에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훌쩍이는 정원처럼.


  “언제까지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서로 눈치 보다가”


  정원이 한숨을 쉬는 사이 크레페가 나왔다. 나는 제일 먼저 나온 크레페를 정원에게 건넸다.



  “자, 먹어. 단 거 먹고 오늘 밤은 일단 기다리자.”

  

  이어 크레페 두 개가 추가로 나왔다. 다음으로 선엽에게 건넸다.


   “웬일이냐. 네가 정원일 이해하고. 평소 같았으면 신경 끄라고 집착이라고 했었을 거 아니야.”

  “뭐, 정원이 마음을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네가? 아, 그 사람? 뭐,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애들은 가라. 그리고 임정원. 기다리긴 뭘 기다려. 보고 싶다고 카톡 보내.”

  “집착이라고 생각한다니까.”

  “네가 무슨 영상통화를 하자 그랬니, 아니면 광주까지 달려오라고 그랬니. 그냥 애정표현도 못하냐?”

  “그런가?”

  “그래. 사랑은 후회없이 표현해야 하는 거야.”

  “오, 역시 장기연애자는 다르군.”

  “그러면 뭐 하냐? 결국 깨졌는데.”

  

  선엽이 쓰읍하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 크레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푸딩과 새콤한 딸기 과육의 향기가 입안에 와앙하고 퍼졌다. 마치 에그타르트 위에 생과일을 올린 듯한 맛이었다. 직원들은 그새 오류를 해결했는지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크레페를 빚고 주문 건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선엽이 지도 앱을 열어 숙소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서점에 대한 생각에 골몰해 있던 나는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이 또 있겠지.
일단 오늘은 딸기 크레페야.



  그렇게 광주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정원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해준이가 나 부담스럽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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