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상)
상반신은 사람과 같고 하반신은 물고기와 같다는 상상의 바다 동물. 인어. 이러한 해석을 찾은 것도 포털사이트의 스크롤바를 한참이나 내려서 발견한 것이다. 인터넷에 ‘인어’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브라자만 걸친 여자만 수두룩하다. 반짝이는 황금빛 비늘. 윤기 있는 붉은색 머리칼. 도저히 회를 떠 초장에 찍어 먹을 수는 없는 비주얼이다. 나는 해산물도 좋아하고, 해물도 좋아하고 회도 좋아하는데, 이제는 하다하다 남자를 골라도 하필 인어를 골랐구나 싶어 괴로움에 이마를 탁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다. 우혁이 인어라고? 인어를 검색해 놓은 화면에서 스크롤바를 조금 더 내리는데 바다의 신이라는 포세이돈 일러스트가 눈에 보였다. 허여멀건한 피부. 푸른색 꼬리. 황금으로 번뜩이는 삼지창. 머리에 쓴 왕관. 석고상으로 보니 더 어마무시하다. 포세이돈은 파도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우혁에게도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가? 믿을 수 없었다.
우혁이는 포세이돈처럼 근육질도 아니고, 특히나 게임을 할 때는 온 정신이 팔려 과일을 포크로 찔러줘도 입에 못 집어넣는 팔푼이다. 석고상처럼 콧구멍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일러스트처럼 눈알이 무지막지하게 크지도 않다. 다 벗겨놓았을 때를 생각하면 두 다리도 멀쩡하고, 사진처럼 허여멀건한 피부가 아니라 구릿빛 피부다. 포세이돈이었다면 근육질에 구릿빛이 어울렸겠지만 이 애는 순 말라깽이라 물 속에 집어 넣어 놓으면 고목하나만 동동 떠 있는 모양일테다. 가라앉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게다가 우혁이는 고작 아쿠아리움에 물고기 사료나 팔아나르는 일개 직장인이지 않은가. 우혁이는 아무리봐도 인간이다. 인어일 수 없다.
다시 인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다. 인어는 말 그대로 바닷가에 물고기가 싸지른 알에서 태어난 개체다. 무엇보다 상상 속의 개체가 아니던가. 그러니 인어의 형상이 어떻게 생겼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우혁이가 인어로 분류된다는 건, 그 애가 언젠가는 바다에서 살았거나 지금도 변신이 가능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반은 물고기요, 반은 인간이라. 그렇다면 우혁이네 조상은 언제부터 진화되어 온 걸까? 그러고보니 우혁이가 살아왔던 동네는 늘 바닷가가 근처에 있었다.
우혁에게 마음을 연 포인트는 분명히 있다. 그건 그 당시의 나에게, 그러니까 정확히는 5년 전의 내게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였다. 둥실, 두둥실, 둥둥. 우혁과 얼굴을 트고 지낸 지 두 달 정도가 되었을까. 하루는 지중해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혁이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때마다 무엇을 하는 거냐고. 우혁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애가 그저 정신나간 물고기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우혁이는 철저하게 자신만의 루틴이 정해져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혁이가 때마다 지중해존을 찾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날 마무리 정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우혁의 시선을 따라 전시실을 바라보았다. 전시실의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삼면, 또는 사면의 유리벽 속에는 각 생물별 환경에 걸맞는 모래나 산호초, 때로는 작은 소품이 쓰인다. 우혁이가 날마다 보고 가는 지중해존은 그 중에 가장 청정한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와이의 해변에서 가져온 백색 모래와 실제 서식하는 해조류를 심어놓고, 수온은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항상 정확한 온도만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사료는 가성비를 따지긴 하지만 늘 좋은 재료를 쓴다. 수족관의 벽면엔 친환경 페인트로 그려놓은 바닷가 일러스트가 있다. 그게 전부지만 인기가 많은 종은 아니라,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쏟지 않는 전시장 중 하나기도 하다. 그저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물고기를 보고 있는 걸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한 가지를 너무 열심히 보고만 있는 걸까.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나는 은근슬쩍 우혁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리가 사귀기 한 달 전 쯤의 일이다. 우혁이는 내 물음에 흠칫 놀라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저기... 저 물고기.”
“아, 저 쪼끔한 거? 지느러미 한쪽 긴.”
“네.”
“물고기광이세요?”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로 우혁이의 어깨를 쿡 찔렀다. 오호라. 네가 그 물고기 덕후인지 뭔지. 어릴 때 공룡 좋아하는 애들 같은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우혁이가 쿡쿡 웃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아니에요. 저기 우리 할아버지. 저기 저렇게 둥실, 두둥실, 둥둥.”
“할아버지요?”
“그런 게 있어요. 내가 관심 많은 물고기인데, 시대씨가 잘 돌봐줘서.”
“우혁씨 소유도 아니잖아요. 나는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는 것 뿐이지.”
우혁이와 나는 그런 식으로 티격태격하곤 했으나 늘 말싸움의 끝을 보는 사람은 나였다. 우혁이는 내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도 굳이 나를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우혁에게 끌렸다. 이를 테면,
“둥실, 두둥실. 둥둥. 그게 저 양반들의 삶의 철학이거든요. 전설처럼 내려오는 게 있죠.”
우혁에게 수족관의 상황이 어떻고, 오늘은 또 어떤 진상 어린이 손님이 있었고를 털어놓는데 그 애가 문득 웃으며 내게 다른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뭐? 둥실, 두둥실, 둥둥?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
“물고기 신화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아니요. 관심도 없어요.”
“저기 오호츠크해. 그쯤일 거 같다. 단군신화처럼, 물고기들도 물고기 신화가 있어요. 이 물고기들이 바다 깊숙한 곳에만 있었야 하는데, 해저도 판이 있거든요. 그 판이 흔들리다보면 바닷속도 지진처럼 물거품이 몰아칠 때가 있죠.”
“웃긴다, 우혁씨. 꼭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본 사람처럼.”
“모르는구나. 나 스쿠버다이빙 할 줄 아는데. 나 해군인데.”
“오. 귀신 잡는.”
“아니요! 그건 해병대고. 나는 그냥 일반 해군. 아무튼. 물고기 신화도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거예요. 물고기가 수면 위로 둥실 두둥실 둥둥 떠오르다가 하늘의 신을 만난 거지.”
“환웅처럼?”
내 말에 우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선 여신이었어요. 소금의 신. 그런데 또 신화에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지 않습니까. 모든 이야기엔 개연성이 필요하거든요. 소금의 여신이 바다의 물고기를 만났는데 같이 살 수나 있겠냐고요. 물고기도, 소금의 여신도 정월대보름이 되어야 하루 만나고 만다는 그런 슬픈 전설이.”
“아하. 그래서 바다가 짜구나? 눈물을 많이 흘려서?”
“뭐, 그렇다고 칩시다. 아무튼 물고기 신화는 해피엔딩은 아니에요. 그래서 슬프지. 또 그래서 물고기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산대요. 너무 애쓰지 말자. 세상에는 간절히 희망해도 되지 않는 것도 있구나. 그러니 조금은 붕 뜬 상태로 살고, 너무 복잡한 건 오래 기억하지 말자.”
“금붕어의 기억력이 그래서 젬병이구나.”
“나 수능 성적은 좋거든요? 그리고 물고기 신화에도 여러 스토리텔링이란 게 있답니다.”
“우혁씨 수능 성적이랑 금붕어랑 뭔 상관? 근데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물고기광 맞네.”
“물고기와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긴 하죠.”
“잘하면 대화도 하겠어. 그럼 뭐야. 인어야?”
그때 우혁이가 움찔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쿠아리움에 있는 모든 물고기들이 우리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었다는 걸, 적어도 이 수족관 속의 모든 물고기가 우리 두 사람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물고기 신화가 진짜 있다는 것도 말이다. 우혁이가 그때 내게 말해주었던 것들을 당시에 나는 진실이라고 믿진 않았다. 다만 그 애를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맞다. 둥실, 두둥실. 둥둥. 세상에는 내 또래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상태로 우혁이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사람마다 타인에게는 쉽게 이해받을 수 없는 감동 포인트들이 있지 않은가. 내게는 우혁이의 둥실둥실이 감동 포인트였다. 정확히 말하면 첫눈에 반하는 포인트.
우혁이는 그렇게 나를 보내고서도 불안했는지 금방 내게 전화를 해왔다. 몇 시간을 운전을 하고, 또 나를 데리러 운전을 하러온 것이다. 그 애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이 인어라는 사실 자체를 업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 그때만 해도 우혁이 인어라는 것은 내게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우혁이가 무엇이어도, 우혁이는 우혁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우혁이는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른 듯했다. 자신이 인어라는 사실을 내게 고백하던 순간부터 우리 두 사람의 세계가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고 믿은 듯하다. 우혁이가 카페에 찾아왔을 때 그 애의 얼굴에서 초조함이 엿보였다.
서른. 이 나이쯤 되면 사랑만으로 관계를 포장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우혁이는 우혁이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우혁이를 무작정 사랑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 수족관에서 우혁이가 말한 둥실 두둥실 둥둥은 내게 없던 결핍 같았다. 살아오며 나는 그런 여유와 빈틈을 지니지 못했으니까. 우혁이를 만나는 동안 그 빈틈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우혁이의 그 한 면만 본 것이다. 당시에 우혁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같은 것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여유로움. 그가 가지고 있는 성정 하나만 본 것이다.
그런 우혁이의 성정이 내게 난감한 요소로 자리할 것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우혁의 차를 얻어 타고 집까지 걸어가는 길.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혁의 사려깊음과 다정함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우혁이가 인어라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걸, 나는 그 차 안에서 깨닫게 되었다. 차 안은 철 지난 가수의 발라드곡만 나오고 있었다. 우혁이의 얼굴을 보니 눈꺼풀이 조금 내려와 있는 것 같았다.
“피곤하지?”
내 물음에 우혁이가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아니야. 네 얼굴 보니까 괜찮아졌어.”
“무슨. 내일 너도 출근하는데.”
“시대야. 고마워.”
“뭐가?”
“나를 받아줘서.”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는 서로가 좋아서 만난 거잖아.”
“아니 그래도...”
우혁이는 정확히 내가 내려달라고 한 곳에 나를 내려다주었다. 차문을 닫으려 하는데 우혁이가 갑자기 내 등을 툭툭 치며 주머니에서 손하트를 꿰어 보인다. 그 순간 우혁이의 손톱이 야광으로 빛났다. 나는 우혁이의 하트보다도 손톱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우혁이가 황급히 제 손톱을 가렸다.
“아... 요즘 이래. 인어들은 나이가 들면 뼈가 점점 야광이 된대. 흰머리 나듯이 말이야. 왜, 그 손톱이 다 뼈잖아.”
“너 이거 진짜 다 사실이구나.”
당황스러웠다. 우혁에게는 딱히 표현하지 않았지만 차에서 내리고, 우혁의 차가 멀리 떠나갈 때까지 나는 멍하니 도로 위를 바라보았다. 식은땀이 났다. 그제야 현실감이 들었다. 우혁이를 계속 만나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우혁이와 계속 연애를 지속하려 할까? 내가 너무 쉽게 우혁에게 마음을 내준 걸까? 우혁이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동안 내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우혁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혁이의 비밀을 받아들일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불면이 시작된 건 그즈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