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도 아니라면 어떨 것 같아? (상)
“시대야, 너는 내가 인어라면 어떨 것 같아?.”
우혁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강변북로를 막 통과하던 시점이었다.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야, 그리고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
“생각해 봐. ‘야’라고 하지 말고. 남자친구한테.”
“인어라... 인어가 어떻게 육지에서 살아?”
“육지에 오면 두 다리로 변신할 수 있고, 바다에 들어가면 물고기가 되는 종족이라고 치자고. 어때?”
“음. 모르겠는데?”
그때 우혁의 질문에 나는 정말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혁과는 평소에도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자주 주고받곤 했는데 가끔 우혁이 이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공상을 펼치면 나는 대체로 모르겠다는 식으로 답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평소와 다름없이 데이트를 하고 돌아가는 길. 그날은 우혁이 일이 있어 나를 근처 역에 내려다 주었고 나는 이때다 싶어 품에 안고 있던 쇼핑백을 우혁에게 건넸다. 정말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우혁이가 운전하는 차 옆좌석에 앉아 그 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고, 우혁이는 왜 그렇게 나를 뚫어져라 보느냐고 물으며 쑥쓰러워했다. 그러면 나는 우혁이의 옆 얼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귀여워서.’라고 말하고 마는 것이다. 내 말에 우혁이가 화제를 돌리려는 듯 턱짓으로 쇼핑백을 가리키며 그게 뭐냐고 물었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우혁은 남들보다 후각이 발달해 금세 냄새를 알아차린다.
“옥수수와 크림치즈가 들어간 빵이구나. 갑자기 빵은 왜?”
우혁의 물음에 나는 부끄러운 듯 쇼핑백을 빼앗아 차 뒷좌석에 던져놓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니네 가족이랑 나눠 먹으라고. 이거 비싼 거야.”
오랜만에 우혁의 부모님이 우혁의 집에 온다고 하시길래 동네에서 유명하고 맛이 좋다고 소문난 빵을 산 것이다. 말 그대로였다. 우혁과 만나는 동안 나는 어딘지 모르게 우혁이 풀이 죽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자신감이 없는 모습.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언제나 자신에게로 돌리는 듯한 인상. 그래서 마침 우혁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고, 우혁이를 태어나게 해주어서 내가 만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는 말을 그의 부모님보다 우혁에게, 우혁 본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야. 시대야, 너무 감동인데.”
우혁의 눈엔 벌써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울지 말고. 운전 잘 해. 나는 저기 앞에 내려다주면 돼.”
우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들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시대야. 고마워. 우혁과 있을 때면 되려 틱틱거리기만 했는데 그날은 어쩐지 우혁에게 다정한 애인이 되어주고 싶었다.
우혁은 언제나 내게 져 준다. 함께 운동을 할 때에도, 게임을 할 때도, 심지어는 우혁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끝말잇기나 스무고개 같은 시답지 않은 말장난을 할 때도 승리의 깃발을 내게 내어주고 만다. 네가 또 이긴 것 같다. 이것은 우혁의 습관이자 내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순간이다. 나는 내가 이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탁 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질 때마다 울상이 되거나 토라진 채 입을 꾹 다무는 편인데, 우혁이는 이기든 지든 언제나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여유로운 모습. 언제나 우혁이가 져 준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혁이 내게 져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혁이는 나 이외의 것들엔 승부욕이 상당한 사람이라는 거다.
우혁이는 야구보다 축구를, 축구보다 농구를 좋아한다. 첫만남에 농구는 비인기 종목이 아니냐는 나의 물음에 우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시대씨,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농구를 좋아하는 게 중요한 거지. 그리고 농구장에는 농구팬이 얼마나 많은데. 한 번 보여줘야겠네.”
그리고 우혁과 정말로 농구 경기를 보러 왔다. 우혁이는 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이제 입사한 지 막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 주제에 몰래 회사를 빠져나와 근처의 PC방에서 진땀을 뺐다고 한다. 우혁이 다니는 회사는 개인 노트북이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 꽤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는 점 하나만 제외하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고, 역사가 오래되어 보수적인 기업 문화탓에 숨이 탁 막혀 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우혁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런 환경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고시를 제법 오래 준비했던 우혁이는 2년 전 꿈을 접고, 지금의 회사에 지원했다고 한다. 우혁이 말로는 선배는 졸라 꼰대 같고, 선배는 자기를 엠지 같다고 말한다고 한다. 어찌됐건 회사에서 몰래 빠져나와 근처 PC방에서 어렵게 어렵게 구한 표를 들고 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우혁의 회사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우혁을 만날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우혁은 은근슬쩍 자기가 해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혁이는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내게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을 즐겼고, 혹은 최근에 수익을 본 주식에 대한 이야기나, 상한가와 하한가를 따지다 문득 자신이 분석한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런 것엔 통 관심이 없었다. 그저 출퇴근길이 안전하면 그만. 사원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는 나의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그만. 우혁이와 별 기복없이 만나다 결혼까지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혁이는 회사를 다니는 내내 이직을 준비했다. 우혁 말로는 어떤 위기가 와도 절대 망하지 않을 제품을 다루는 기업에서 연봉을 더 높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혁이가 기를 쓰고 준비하는 회사는 주유 업계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주유나 식품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우혁이가 이직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일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혁이는 날마다 내게 시덥지 않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혁이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학교에서 법학을 전공 했다고 했다. 그러나 우혁이는 자신의 출신에 비해 취업은 영 못한 편이라고 내게 푸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우혁이는 전국의 아쿠아리움을 돌며 영업을 한다. 우혁이가 파는 상품은 물고기를 위한 사료다. 우혁이가 실적을 내야 하는 것은 최근에 새롭게 개발된 바다생물용 영양제, 소비자는 물론이요, 이제 많은 수족관이 국내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물가가 오르기도 올랐거니와 해외에서 생산한 사료가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혁이네 팀은 아직 현존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팀을 없애면서 직무를 사라지게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 두기도 쉽지 않으니까. 우혁은 내게 푸념을 털어놓는다.
“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내 인생 이긴 것 같았는데, 지금 이건...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야.”
이것이 요즘 우혁의 상태다. 그러니까 자신이 인어임을 고백하던 시점의 내가 아는 우혁에 대한 모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혁이는 처음부터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혁이 내게 그런 말들을 늘어놓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우혁에게 나의 존재는 이긴 것일까, 진 것일까? 우혁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환경을 가졌다면, 그런 삶을 살았다면 나를 선택했을까?
우혁을 처음 만난 곳은 수족관이었다. 왜 하필 수족관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사소한 오해와 쓸데없는 용기가 우리 사이를 운명으로 만든 것이다. 우혁이는 매일 수족관에 오는 남자였다. 내가 근무하는 아쿠아리움은 5년째 일하고 있는 업장이다. 나의 일은 우혁이가 한때 날마다 보러 왔던 지중해에 살고 있는 어류를 전시해놓은 관이었다. 서른이 넘어 다 큰 남자가 제 손바닥 보다 작은 해마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처음엔 미친놈인가 싶었고, 나중엔 무슨 사연이 있는가 생각했다. 하루에 5분에서 10분 정도. 가만히 해마의 건강 상태를 살피듯 보고 떠나는 것이 내가 아는 그 애의 루틴이었으므로 딱히 주변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그저 관람하고 가는 편이라 그렇던가, 하고 말았다. 그 애가 옆에 서 있을 때면 180 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키에 덩치가 제법 커 수족관 바닥으로 그림자가 질 때면 바닥에는 물결의 일렁거림이 지워졌다 생겨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곳에서 물고기들의 밥을 제때 주고, 새로이 물이끼가 낀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간혹 장내를 돌아다니며 물고기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이상한 관람객이 없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내 일의 전부다.
수족관에 오는 사람들은 시간대별로 목적이 달라진다. 평일 아침과 점심 무렵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이거나 학교 단체다. 간혹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커플이 오기도 한다.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이들이 모두 뒤섞이나 주로 젊은 커플이 많은 편이다. 이곳을 혼자 찾는 사람도 간혹 있으나, 이들의 얼굴 표정을 보아하면 그저 유난한 호기심보다는 가둬 둔 물결 사이 마음을 묻으러 온 것으로 보인다. 사소한 오해와 쓸데없는 용기를 묻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차마 저 너머로 묻지 못하는 마음을 흘려 버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나는 수족관을 혼자 찾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어딘지 모르게 소속감을 갖지 못하고 이방인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듯한 사람들은 남들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외계인임을 자처하며 시간이라는 일정한 틀 속에 자신이 가둬지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치 물 속에 잠긴 인공산호처럼 말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내가 서른이 넘었을 때, 나는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저편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생각이 거기까지 갈 수 있었을 때 나는 그 애와 해마 사이, 어쩌면 내가 모르는 시간이 숨겨져 있겠다는 여유를 둘 수 있을 만큼 내가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소한 오해와 쓸데없는 용기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는 이미 아쿠아리움 내 직원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매일 아쿠아리움에 찾아와 특정 전시관 앞에서 우두커니 오랜 시간을 서 있는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매일 똑같은 자리, 똑같은 종을 보러 오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가 어떤 종류의 빌런일지 알지 못해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그가 날마다 보러 오는 종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수족관에는 수백여 마리의 물고기종이 있고 그들에게 일일이 관심을 쏟는 것은 쉽지 않다. 사육사라고 하지만 말만 그럴 뿐 실은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중요한 건 물고기가 오래도록 상품의 가치를 잃지 않게 관리하는 것. 그것을 위해 나는 일했다. 실질적으로는 물고기가 지속 가능한 환경을 가질 수 있도록 수온을 조절하고 제때 밥을 챙기고, 주변을 돌다 물고기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관람객을 제지하는 정도가 딱 내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 때문인지 어느 날부터 그가 유심히 관찰하는 물고기에 관심이 갔다. 도대체 저게 뭐길래 다 큰 남자가 수족관을 찾을까로 시작된 궁금증은 나도 모르게 물고기에게 말을 걸거나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 보게 만들었다.
그 물고기를 들여다보던 어느 날, 푸른빛 조명 사이를 가리는 그림자가 내게 덮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남자였다. 그는 내게 다짜고짜 꾸벅 인사를 했다.
“저기... 고맙습니다.”
그는 내게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침을 발랐다 시선을 돌렸다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나 어쩔 줄을 모르겠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도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무턱대고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손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서비스에 감동을 받아서? 그런 상황은 레스토랑에서나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방금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그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시대씨, 괜찮으시면 제가 밥을 한 번 사드리고 싶은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아... 이름. 이름표. 여기.”
그가 내 가슴팍을 가리켰고, 나는 순간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우혁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밥을 사 드리고 싶은데. 비슷한 또래의 이성이 내게 해오는 제안. 누가 봐도 ‘호감’이 아닐까 싶었다. 그 순간 ‘빌런일지도 몰라!’하는 마음의 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나는 나보다 키도 크고, 잘 생겼고, 목소리도 다정해 보이는 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는 내게 점심시간이 언제냐고 물어왔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코엑스에 있는 식당에서 한 끼 정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라하는 태도. 숙맥이구나.
다음날 그는 내가 아쿠아리움에 근무하는 5년 동안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최고급 요리를 코스로 대접했고,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우혁이가 유일하게 못 먹는 것이 해산물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혁이가 하는 일이 물고기 사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영업을 하는 일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다.
우혁이는 남들보다 몸이 유연한 편이다. 비쩍 마른 몸 때문일까, 아니면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어서일까. 그 밖에도 우혁이는 나와 다른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 애의 턱선 부위에는 큰 흉터가 양쪽으로 나 있는데, 그 애의 말로는 어릴 때 물가에서 놀다 저수지로 굴러 떨어져 덫에 턱을 베이며 남은 상처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우혁이는 그것이 콤플렉스인지 언제나 살구빛의 팩트를 바르고 다닌다. 우혁이는 그러면 남들의 눈에 잘 돋보인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애의 가까이에 서 있을 때면 너무나 눈에 잘 띄인다. 특히나 그 애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출 때면 나도 모르게 손끝이 그 애의 흉터를 더듬게 된다. 그럴 때면 부푼 흉터가 손 끝에 도드라지듯 남는 것이다. 그 밖에도 바늘 같은 뾰족한 물건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곁에는 언제나 물병이 놓여 있었다. 우혁이는 아침저녁으로 수영하는 것을 즐겼고, 여름 휴가를 떠날 때면 해변가를 빼놓지 않았다.
우혁과 만난 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우혁의 바램으로 우리는 일본의 작은 소도시로 휴가를 떠났다. 한여름이었고, 우혁이가 서핑을 너무 하고 싶어하는 바람에 에노시마를 택했다. 실은 나는 교토를 가고 싶었는데, 우혁이가 바다를 좋아하는 바람에 입을 꾹 다물었다. 겨울에 만난 우혁은 봄과 여름이 지나도록 대체로 내게 맞춰주는 편이었는데, 그때마다 그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도 모르게 우혁에게 내 솔직한 취향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 애를 배려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점의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기 바빠 네 취향도 내 취향도 아닌 이상한 것들을 선택하곤 했던 것이다. 우혁에게 내 주장만 하는 별로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에노시마가 좋다고 말했더니 우혁이가 입을 귀까지 올리며 활짝 웃는 게 아닌가.
그런 걸 발견할 때마다 나는 우혁이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것 같다. 에노시마는 도쿄에서 1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오는 작은 섬이다. 운이 좋은 날이면 에노시마의 중앙에 위치한 탑에서 후지산을 볼 수도 있다고 우혁은 내게 말해주었다. 이제 막 비행기에 착석했을 때 우혁은 내게 에노시마는 자신에게 고향 같은 곳이라고 덧붙였다.
“고향이라고?”
“응. 우리는 대부분이 북쪽 해안가에 살아서.”
“누가?”
나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우혁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비슷한... 아.. 아니다. 내 고향의 풍경과 비슷하제.”
우혁의 사투리는 누가 봐도 어색하다. 우혁은 자신이 부산에서 올라왔다고 했지만, 내가 아는 부산 사투리는 우혁의 것과 다르다. 나에게는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부산 출신의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날 때부터 서울에서만 자라왔으므로, 우혁의 사투리가 맞는지 아닌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우혁의 말을 믿었다. 우혁은 부산에서 태어나, 점점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에는 김해에서 살다 중학교 때에는 진주로 올라오고, 고등학교 때에는 잠깐 속초에도 있었다고. 우혁이는 어쩌다보니 자신의 운명이 바다와 인연이 깊다고 했다. 우혁이는 해군을 나왔고, (해병대와 해군이 다르다는 건 이때 안 사실이다) 그렇지만 해산물은 먹지 못한다. 저수지에서 올챙이를 보면 별 감상이 없는데, 갯벌에서 작은 게들을 보면 눈을 찡긋거린다.
좀체 알 수 없는 사람, 그것이 우혁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사랑은 그렇게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