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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실루엣 Mar 09. 2020

캐롤

이유없는 끌림

영화 ‘캐롤’은 1950년대 뉴욕에서 살아가는 두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는 우연히 손님 캐롤을 마주하게 되고,

그녀에게 마음을 점점 뺏기게 된다. 캐롤 또한 그녀에게 눈길이 가고, 둘은 각자에게 남자가 있음에도 서로의 마음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캐롤의 이혼 소송은 둘의 사랑을 방해하게 되고

캐롤은 힘들어하는 테레즈를 더는 볼 수가 없어 그녀로부터 도망간다.

어느 날, 테레즈에게 편지 한 통이 온다.

“테레즈에게. 오늘 저녁에 만나줄래요? “

처음 만난 그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둘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되었을까.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던 영화



‘사랑에 빠진다.’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 가지 않을 때 그녀들의 눈빛을 보여준다면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만일 이 영화에 대사가 없고, 음악과 눈빛만으로 구성되어 있어도 충분했을 정도로 주인공들의 눈빛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둘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그 날, 테레즈는 건너편에서 장난감 기차를 구경하는 캐롤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그녀는 캐롤과의 첫 대화 속에서 직원의 본 업무인 계산 업무조차 까먹고 혼이 나간다. 그런 모습을 캐롤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지만, 그녀 또한 차분한 마음은 아니였음을 계산대에 두고 간 장갑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차창 밖으로 멀리 있는 상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씬이 주인공마다 주어진다. 차창은 어쩌면 둘 사이의 한계, 벽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넘지 못할 한계를 느낄 때 감정은 더 애틋해진다. 그런 그녀들의 눈빛을 보면 얼마나 이 마음이 크고 겉잡을 수 없는지 느껴진다.







이 영화에 악역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 이성적인 사람은 없다.

캐롤의 남편 하지의 비도덕적 행동을 옹호하는건 절대 아니지만, 그의 찌질하고도 절박했던 심정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테레즈의 남자친구 리차드 또한 캐롤과 떠나려는 테레즈에게 화를 내며 악담을 퍼붓는다. 하지와 리차드의 행동은 그들이 얼마나 그녀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도 그녀들과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꿈꿨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기도 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지는 것만이 아닌 사랑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이야기도 담아내었다.





진심이 담긴 사진


사진작가를 꿈꾸는 테레즈는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지는 인물사진을 꺼렸다.

그런 그녀의 카메라에 처음으로 한 피사체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캐롤이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미소와 행동을 하나둘씩 담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왔다.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졌던 마음은 어느새 그녀의 사생활에 조금씩 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변해갔다.

캐롤은 그녀에게 왜 인물사진을 찍느냐고 묻는다.


-친구가 그러는데 사람에게도 흥미를 가져보라길래요.

-그래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잘 되어가고 있어요.


대답 속 테레즈의 눈빛은 당차다. 

누군가에게 흥미를 갖고 관찰하는 일이 잘되어간다는 대답과 눈빛을 통해

캐롤을 향한 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사랑 전, 허무함



캐롤은 그녀의 집으로 테레즈를 초대했고, 둘은 편안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하지로 인해, 분위기는 삭막해졌고 캐롤과 하지의 언성은 높아져 갔다. 방 안에 있던 테레즈는 레코드 소리를 높여 그들의 격한 다툼으로부터 귀를 막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테레즈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리게 한 가장 큰 원인은 ‘허무함’ 일 것이다. 캐롤의 집에 가기 전, 테레즈는 꽤 들떴다. 주고받을 대화, 어필할 매력 등을 상상하고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하지의 등장으로 알게 된 그들의 한계와 무너져버린 들뜬 기분은 그녀를 울게 하였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은 `허무함` 이다. 너도 날 사랑할까. 우린 어떤 시간을 보낼까. 우리의 미래는 어떤 색일까. 그 질문 끝 찾아온 대답은 부정 혹은 침묵일지도 모르며, 우리는 허무해진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테레즈는 얼마나 울었을까





이유 없는 끌림



대니가 말한다. 

“사람은 사람에 대한 호감을 갖기 마련이야. 특정한 어떤 사람이 좋아질 때도 있지?

그 사람에게 끌리거나 끌리지 않는 이유는 알 방법이 없어 우리가 아는 건 그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냐 뿐이야.

물리학 같은 거지. 서로 부딪히는 핀볼들처럼.”


특정한 누군가가 자꾸 생각나고 눈길이 갈 때를 생각해보자.

‘입덕부정기’라는 말처럼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좋아해야 하는 이유를 찾곤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끌리고 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우리가 알 수 있는 한가지이다.

테레즈가 처음 캐롤을 마주했을 때, 캐롤이 처음 테레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 순간들 모두

그들은 이유를 찾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질문하자. 내가 이 사람이 끌리는 이유 말고. 계속해서 끌리는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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