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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Sep 17. 2020

피구왕 서영

황유미


"다른 사람은 모르는 이서영은 방에 혼자 있을 때만 튀어나온다. 사방이 소설책으로 둘러싸인 방, 타잔이 넝쿨을 타고 숲을 유영하듯 서영은 책을 읽으며 방 안을 탐험한다. 숲이 되고, 바다가 되고, 우주가 되기도 하는 이 작은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렇게 가끔 이서영만 아는 이서영이 튀어나오려 하는 순간들이 있다. 서영만 아는 비밀을 조금은 꺼내 보여줘도 좋을 것 같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다. "


"서영이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드문 이유는 방을 공유하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아서였다. 서영의 방은 이서영만 아는 이서영이 사는 아주 개인적인 우주였다. 그래서 방에 누군가를 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



자신만의 세계가 강한 서영이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어릴 적 나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방 한구석에 꼼꼼 숨겨두며 놀다가 친구들 앞에서는 그 즐거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했다.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좋아서.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서영의 말에 공감한다. 언제든지 변신할 다양한 자아는 타인의 시선 없이 오로지 나만 보고 싶었다. 


오로지 나만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세계에 초대되는 이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서영의 세계에 초대된 사람은 윤정이고,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서영은 가장 아끼는 책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알아주는 윤정이 좋았다. 오랜 친구처럼 편안했다. 하지만 학교에선 그 누구도 윤정을 좋아해 주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마저도 따돌림시킨다. 


서영이 자신의 세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그 세계에 초대된 윤정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된다. 그걸 알았기에 읽는 이들도 마음이 저릿해진다. 





"서영은 윤정이 관계에 아무런 미련이 없어 초연했던 게 아니라, 언젠가는 서영이 먼저 다가와 주리라 믿고 기다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실에서 단 하나 남은 관계가 혹시라도 끊어질까 봐 조심스러워서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윤정의 마음이 보였다. 그 순간 서영은 와락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윤정아.” 서영은 다짜고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고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서영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대충 훔치며 윤정에게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윤정은 갑작스러운 서영의 눈물과 사과에도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서영을 달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영을 토닥이는 손길이 다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서영은 반에서 가장 잘 나가는 현지의 무리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윤정이와는 학교 밖에서만 우정을 나눴다. 그런 자신의 태도에 서영은 늘 죄책감을 느꼈다. 어느 날, 서영은 정은의 초대에 거절하지 못해 윤정과의 약속을 취소했고 뒤늦게 그 장소에 가보니 윤정은 오랫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고 있었다. 서영은 펑펑 울었다. 


어릴 적, 누군가 “너 쟤랑 놀지마”라고 하면 싫다고 하지 못하고 ‘쟤’를 있는 힘껏 무시하기에 동참했다. 사실 난 그 친구랑 놀고 싶었다. 그때 거절하지 못했던 이유는 ‘나도 쟤처럼 될까 봐’였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쟤는 화해를 했고 난 멍하니 둘을 바라보았다. 비겁하게 외면한 내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죄책감이 든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실 풍경을 보면 대략적인 권력 구도를 알 수 있다. 교실 한쪽에 다섯 명의 여자아이가 모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권력의 피라미드에서 꼭대기 계층을 차지하고 있는 집단으로 보였다. 그 가운데 말수가 많지는 않아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한눈에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서 있는 듯한 여유로운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서영은 그 집단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쉬는 시간이 학교에서 무리를 짓는 시간이라면, 하교는 학교 밖으로까지 무리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이미 모두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떠난 텅 빈 교실에서 서영은 허탈함을 느끼며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모든 종의 동물이 무리를 지어 떠나간 후 세렝게티의 초원에 홀로 남은 낙오자 같았다. 일단은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서영은 서둘러 가방을 챙긴 후 교실을 나서 운동장 쪽으로 걸어갔다."


책에서 말하는  교실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반 배정을 받고 첫 등교 날, 어느 무리에 들어가야 할지 탐색이 들어간다. 끈끈한 결속력이 형성되어 있는 무리는 이미 반에서 큰 결정권을 지니고 있다. 너무 강하지 않고 또 너무 약하지 않은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오늘 체육시간에는 짝피구를 했다. 학교에서는 꼭 짝피구를 할 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짝으로 붙이고 남자에게 여자를 보호하는 의무를 부여하곤 했는데, 보호는 커녕 짝피구야말로 승패 유무에 따라 패배의 원인을 ‘네 탓’으로 돌리기에 딱 좋은 운동이었다 짝이 된 남녀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어 경기에 임하게 되며, 특히 여자아이의 생사가 남자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남자아이는 짝인 여자아이가 공에 맞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 아마도 경기를 통해 서로를 잘 보살피라는 교육을 하기 위해 만든 운동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에서 짝피구는 남녀가 서로 편을 갈라 물어뜯기에 딱 좋은 게임일 뿐이다."



남학생은 여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놀이.

남자는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권위의식도 함께 가르친다.

여학생을 잘 지켜낸 남학생은 모두에게 칭찬 받았고 칭찬 받지 못한 이들은 짝이 된 여학생을 나무란다.






"전학과 동시에 백연초등학교 4학년 3반이라는 소속이 부여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름뿐인 소속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고 과학실, 음악실, 운동장 심지어 화장실까지 교내에서 이동이 필요한 순간마다 누구와 같이 갈지. 그리고 누구와 같이 집까지 걸을지 등 생활 전반을 결정짓는 진짜 소속은 아무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롯이 아이들끼리 알아서 만들어가는 진짜 소속은 이름뿐인 소속보다 훨씬 중요하다. "


소속을 찾아가는 방법이 마냥 나쁜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야 하며, 나와 어떤 성향이 잘 맞는지 찾아나가는 과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진짜 소속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서럽게 느껴진다. 책 내용처럼 교내에서 이동이 필요한 순간마다 누구와 함께 갈지 누구와 같이 걸을지 등 생활 전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상대와 진짜 함께 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보다는 그냥 누구와 같이 있어야 할 것 만 같아서 다가가는 경우로 변질될 수 있다. 그게 당연해지면 혼자 다니는 아이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외톨이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그 시선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아이에도 억지로 맞춰가며 시간을 보낸다.


사실 부질없다. 혼자 과학실, 음악실을 가도 되는 것이고 때때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는 학교생활도 전혀 문제없다. 모두가 자신만의 소속을 찾아갔다고 해서 나 혼자만의 소속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아무도 그래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그런 시선이 여전히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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