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치며 넓어지는 나의 세상
물은 늘 멀리서 바라만 보는 존재였다.
길고 짧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나의 여행에서 수영장은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없었다.
그래도 잡은 숙소에 마침 수영장이 있을 때면
평소엔 못 보니까,
괜히 아까운 마음에
대형 목욕탕으로 이용하곤 했다.
30대 중반을 지나며 우연히 만난 수영은
내 삶을, 우리 부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수영과 친해진 후, 첫 해외여행.
여행지를 정하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남아 휴양지를 찾았다.
하루 종일 수영 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우리에겐 분명 천국일 거야.
어느샌가 정신 차려보니 세부행 티켓이 결제되었다.
수영을 위한 여행이라니!
너무 설레!
숙소를 고르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심사숙고해서 수영장을 골라야 했다.
여행 계획은 간단했다.
첫날은, 고래상어와 헤엄치기로 정했다.
고래상어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아무래도 도로 상황이
우리나라만큼 좋지 않아서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고래상어를 만나려면
새벽에 도착해야 한다.
하지만 살면서 몇 번이나 고래상어와 함께 수영해보겠나 싶은 마음에
마냥 젊지 않은 우리는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 외 날들은 아주 단순했다.
아침 먹고 - 수영 - 점심 먹고 - 수영 - 커피 한 잔 하고 수영 - 저녁 먹고 술 마시기.
여러 벌의 수영복을 챙기는 순간도 행복했다.
매일매일 돌려가면서 입어야지!
밤 비행기로 도착하자마자 바로
고래상어를 만나러
4시간을 차 타고 가야 하는
쉽지만은 않은 여행의 시작.
해가 뜨기도 전에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mbti J 99.9%인 나는,
사전에 많은 서칭을 통해
고래상어가 아침에 사람들이 주는 새우젓을 먹으러 온다는 것과
(그래서 아침 시간에만 볼 수 있다.
아침에 먹고 가기 때문에…)
그 새우젓이 염분을 더해
물에 둥둥 뜬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래서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나가지만,
수영할 줄 알면 벗어도 된다는 이야기도.
긴 기다림 끝에 해가 떴고, 우리의 작은 배도 출발했다.
나는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가이드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 수영할 줄 아는데, 가서 구명조끼 벗어도 되죠?”
“오, 수영할 줄 알아요? 그럼 벗어도 돼요.”
파란 물속에서 고래상어를 배경으로
인어 같은 나의 사진을 남기리라, 나는 상상했다.
생각보다 꽤 먼바다에서
배는 멈추어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자신만만한 내게
그래도 벗지 말라고, 일단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훗.
풍덩 -!
두근대는 마음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게 웬걸…
처음 뛰어든 바다 앞에서 나는 쪼그라들었다.
자만하지 마라. 바다가 내게 말했다.
나는 파란색 속에 있었다.
물 위를 제외하고 모든 공간이 파랬고,
바닥은 끝이 없었다.
두려웠다.
스노클은 챙기지 않았다. 숨 쉴 수 있으니까.
숨 쉬러 고개를 꺼낸 순간, 파도가 일렁였다.
나는 어항 속 금붕어였던 것이다.
바다는 물살이 끊임없이 출렁였고,
입으로 몰려드는 짠 물에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컥 내려앉았다.
수영 못하는 사람들 잡으라던 나무기둥을
놓칠까 무서워 꽉 붙잡았다.
나와 달리 엄청 걱정하더니
막상 자유롭게 헤엄치는 남편은
가이드와 함께 나를 놀렸다.
“구명조끼 벗는다더니~ 괜찮아 이리 와!”
“무서워요? 하나도 안 무서운데!”
바다에 머무는 시간은 30분 정도였는데,
나는 마지막 5분 정도 남겼을 무렵에야 조금씩 적응했다.
이제 좀 적응했는데, 떠난다니 너무 아쉬웠다.
… 내 상상의 멋진 사진은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고,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그래도 고래상어를 만나긴 했다.
가는 일정과 길이 힘들었어서, 아마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고래상어가 아닐까.
그래도 이 날의 바다,
이 날의 순간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후의 날들은 계획대로 보냈다.
정말 행복했다.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
수영하다 좀 힘들면 책 읽고 쉬다가 또 들어가고.
남편은 피부가 다 벗겨졌고
나는 매일 백 타입이 다른 수영복을 입었더니
여러 형태의 수영복 자국이 문신처럼 남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수영하길 정말 잘했다고, 우리는 매일 이야기했고,
그 이후로도 우리의 모든 여행은 수영하는 여행이 되었다.
국내여행을 할 때면,
수영장 있는 숙소가 마땅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공립 수영장을 들른다.
누군가는
전국의 수영장 다 돌아다닐 거냐고,
여행 가서까지 수영해야 하냐고 했지만,
우리는 수영을 하기 위해 여행을 간 거다.
다른 동네, 다른 풍경 속에서 헤엄치기 위해서.
삶은 여행이고, 여행은 삶과 같다.
수영이 삶이 되었고, 수영은 여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