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Jan 31. 2024

#6 문장이 완성되는 순간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문장들

잘 쓴 글과 마음에 남는 글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을 쓰는 나 또한 언젠가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고, 내 글이 그런 글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글이 된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겠지만 과연 잘 쓴 글은 어떤 글인가에 대해 여전히 생각한다. 잘 쓴 글이란 작가의 의도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글이라 설명한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작가가 그 글을 쓰는 동안 느낀 감정, 독자가 느끼기를 바란 어떤 의도, 혹은 포함하고 있는 정보가 읽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글쓴이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하니 그렇게 완성되어 그 내용을 잘 담아 나르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내용에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발신자가 의도한 바가 꼭 그대로 전달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정보전달이 목적이 아닌 글에서 독자나 청자, 즉 수신자가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여 결국 그것을 통해 무언가가 그들의 마음 깊이 남는다면 그것 또한 좋은 글이 아닐까. 수려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많이 읽히는 글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마음에 담아 오래 기억하는 글이라면 말이다.




문장의 의미


  누구나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사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말이나 문장일 수도 있겠고, 친구나 가족, 우연히 지나치다 보고 들은 누군가의 말일 수도 있을 테다. 아무리 유명한 문장이나 말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마음 끝까지 와닿지 않는 것들이 있고, 어떻게 보면 정말 일상적이고 평범한 문장이지만 왜인지 잊히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런 잊히지 않는 문장들이 마음에 남게 된 어떤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문장들은 내 마음이 아주 행복했던 순간에도, 반대로 크게 지쳐있는 순간에도, 어떤 사람을 얻은 순간에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그 순간에도 생각지 못한 호흡과 길이로 찾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기도 했고, 완전한 타인의 말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들에 사랑이나 그리움, 미움이나 깨달음 같은 어떤 감정들이 함께 남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글과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깊게 믿는다. 하나의 문장은 어떤 순간, 어떻게 닿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가 생기고 누군가에게만 작용되는 힘을 가진다. 어떤 문장들은 대체로 암호와도 같아서 특정한 매개체 없이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기도 하니까.




  얼마 전 I는 팬들에게 남기는 편지에 이런 문장을 썼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주는 큰 사랑이 가장 작은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지 마지막즈음 남아있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말, 우리가 많이 하던 말 같은데? 이전 글에서도 남긴 적 있던 이 말이, 이 문장이 담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I에게서 이 문장을 되돌려 받았을 때의 충격이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세게 뛸 정도다. 나의 마음은 충분히 크지만 당신이 어디에서든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 내 마음이 '크다'라고 자신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는 문장.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 마음을 여전히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할 수 있게 하는 말.


  내가 주기만 할 때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던 문장이 서로의 마음을 매개로 나에게 다시 돌아온 순간, 이 문장에 마지막으로 걸려있던 자물쇠가 풀리고 무언가가 다시 태어났다. 영원을 담은 순간의 마음이, 절대 잊히지 않을 문장으로 말이다.



 

사랑을 에두른 모든 문장에는


  이렇게 더해진 많은 문장들에 입혀지는 모든 순간들에는 I가 있다.

  모두가 사랑을 말하는 문장이라 말할 때에도 '단순히 좋은 걸 보니 좋은 사람이 생각나는 건가' 하며 스쳐 지났던 몇몇 문장들이 I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 있었다. 아주 찰나였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서 이 모든 문장이 완성되는 느낌이란, I가 자주 입에 올리던 '낭만'이라는 단어가 말없이 설명되었던 순간의 느낌과도 같았다.


  어떤 퇴근길에 올려다본 하늘에 예쁘게 뜬 초승달 위로 I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 어느 날에는 나츠메 소세키가 사랑한다는 말의 번역으로 건넸다는 '달이 참 예쁘네요 (月が綺麗ですね)'라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던 문장이 왜 그의 안에서 사랑한다는 말의 번역이 되었는지 깨달았다.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과 함께 담긴 I를 보면서는 이병률 시인이 그의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왜 '삿포로에 갈까요.'라는 문장에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라는 뜻을 덧붙였는지도. 그러니까 그건 그 순간에 나츠메 소세키가 떠올린 달이 내가 본 초승달이 아니라 꽉 찬 보름달일지 몰라도, I가 보여준 풍경이 삿포로가 아니라 사실은 오타루였다고 해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그 문장들만이 그 순간에 지나간 어떤 마음을 완성하게 된다는 의미일 테다.




  특히 사랑을 에두른 모든 문장들에는 그 문장 위로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가 있을 때 비로소 채워지는 공간이 있다. 그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반대로 정말 찰나의 순간에 채워질 수도 있는 크기를 알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 빈 부분을 채우며 마음 깊이 자리 잡는 문장이 남기는 잔향은 그 무엇보다 오래 곁을 맴돌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지치는 어떤 순간에 나에게 힘을 주겠지. 내가 어떤 순간에 I를 통해  그 틈을 채워 얻은 새로운 문장들이 반대로 어떤 순간에 나에게 생긴 공간들을 채워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덕밍아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