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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Nov 11. 2020

등산


이제는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둘 다 기억을 못 하지만, 몇 년 전 겨울, 나와 신천이는 눈 덮인 북한산을 등반 중이었다. 


평소 등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우리는, 한국에 아웃도어 매장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를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흡사 셰르파마냥 각종 등산 장비를 풀장착한 채로 등반 중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대충 여기서 등산객들이 살짝 나오게 사진을 찍고는, 자 이때는 제가 안나푸르나를 등반 중이었을 땐데요. 이쯤에서 겨울잠을 자던 곰이 깨어나서.. 라고 발표를 이어가도 웬만해선 다 속아 넘어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거야 등산객들 얘기였고, 나와 신천이는 누가 보면 피씨방 가다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오해할 만한 차림으로 눈 덮인 북한산에 도전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둘 다 그저 등교하는 차림에 아디다스 슈퍼스타와 컨버스 하이 정도를 신고서 미끌미끌 아찔아찔 한겨울의 북한산을 네 발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산을 반 정도 올랐을 때였다. 하산 중이던 셰르파 아저씨가 거의 땅에 붙어 다니고 있던 우리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너희 아이젠 없니? 하고 물었다. 우리는 하하! 웃으며 마 아이젠은 없씨도 끓는 피가 있더 아입니꺼! 정도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무척 진지한 표정이 되어, 요컨대 끓는 피로 어떻게 올라갈 순 있어도 내려갈 땐 죽어서 차갑게 식을 가능성이 크다는 조언을 남기고선 빙판에 아이젠과 등산 스틱을 쩍쩍 박으며 우릴 지나쳐갔다.


피 끓는 청춘답게 오직 앞만 보며 전진 또 전진하던 우리는, 그제서야 지금까지 우리가 기어올라온 경로를 돌아봤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북한산 정상이 아닌 하늘나라로 약진 중이었음을 깨달았다. 신천아.. 우리 어떻게 내려가냐.. 아저씨의 쩍쩍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 서늘하게 맴돌았다.


곧바로 아찔아찔 하산 대작전이 시작됐다. 나와 신천이는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겨가며 대체로 엉덩이를 이용해 데굴데굴 하산했다. 마침내 등산로 초입에 도착해낸 우리는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 엉덩이에 파스를 붙이며 나는 다짐했다. 등산 같은 거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


하지만 나는 한 번 한다면 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나 아빠와 대둔산을 오르게 됐다. 우리 아빠는 일주일에 무려 네 차례나 미륵산에 오르는 산 사나이였고, 본가에 내려와 뒹굴거리던 내가 그의 등산 메이트로 낙점돼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른 새벽 비몽사몽인 상태로 아빠 차에 실려 대둔산으로 이송됐다. 뭐 막상 와 보니 산이 적막한 게, 오랜만에 좀 걸으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묵묵히 산행을 즐기는 타입인 줄 알았던 산 사나이는 생각 외로 굉장한 수다쟁이였다. 아빠는 산을 오르는 내내 공기가 너무 좋지 않니 아들, 저기 다람쥐 좀 봐라 아들, 요즘 엄마 잔소리가 너무 늘어서 힘들다 아들, 같은 말을 계속 걸어왔다. 그렇게 적막 속의 산행은 금세 요원해지고 말았다. 


아빠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정상에는 웬 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등산객들을 보아하니 그 탑이 대둔산 정상의 포토스팟인 듯했다.


아빠의 강력한 주장에 우리도 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아빠는 탑 근처에 있던 아저씨에게 사진 좀 부탁한다며 핸드폰을 건넸고, 아저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아빠와 나는 탑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포즈를 주문하며 굉장히 의욕적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아저씨의 호탕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촬영이 끝났다. 나는 아저씨에게 핸드폰을 회수하러 다가가 감사합니다, 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말없이 아빠의 핸드폰과 카메라가 켜진 본인의 핸드폰을 함께 건네곤 탑 쪽으로 향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 자연스러운 딜리버리에 서로 한 번씩 찍어주는 게 산 사나이들의 룰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사진에 영 소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탑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아빠에게 촬영을 넘겨보려 했다. 하지만 아빠는 어느새 저쪽 절벽 끝에 서서 대둔산 정복의 희열을 만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는 그에게 전혀 닿지 못하는 듯했다. 아저씨가 탑 앞에 도착해 포즈를 취했다. 이제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아저씨를 겨눈 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촬영이 끝났다. 결과물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나는 뿌듯한 심정으로 아저씨에게 본인의 핸드폰을 넘겨줬다. 아저씨는 핸드폰을 받자마자 내가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나는 고마워요, 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아저씨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되더니, 탑이 다 나오게 찍어야지 참.. 하고 나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이어서 예의 표정으로 나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다시 핸드폰 카메라를 켠 채 주위에 있던 등산객 부부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저씨는 그 부부에게 핸드폰을 넘겨주곤 다시 탑 앞으로 가 포즈를 취했다.


나는 얼른 아빠에게 달려가 핸드폰을 돌려주며 쫑알댔다. 아니 그래도 열심히 찍는다고 찍은 건데 대놓고 그러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사진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않냐고. 아빠는 허허 웃기만 했다. 나는 아니 아저씨는 뭐 얼마나 잘 찍었길래 저러냐는 생각에 아빠한테 다시 핸드폰을 받아왔다. 그리곤 우리가 찍힌 사진을 확인했는데.. 아, 이거야 걸작이었다.


그 사진을 본 후 나는 하산 내내 커다란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산 중 혹시라도 그 아저씨와 마주쳐버리진 않을까 두려워 자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호다닥 산을 내려갔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죽을 뻔했다.


집에 돌아와 삐걱대는 발목에 파스를 붙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등산 같은 거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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