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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기 Oct 31. 2023

신생아 때

37일 차

영시가 태어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어. 신생아 시기를 갓 지나왔지. 신생아 때 영시 사진이 엄청 많아. 아빠가 엄마한테 아주 좋은 카메라를 출산 겸 생일 겸 이사 겸 결혼 2주년 기념 선물로 주었거든. 병원에 그렇게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건 아빠 엄마밖에 없었어. 히히


아빠한테 의지해서 천천히 신생아실로 가던 때가 생각나. 휠체어도 타고 가고, 천천히 걸어서도 가고. 아빠 엄마의 가장 설레는 병실 외출이었어. 수술한 날은 아빠 혼자만 보고 왔거든. 아쉬워할 엄마를 위해 아빠가 영상통화도 걸어주고, 영시 사진을 수십 장을 찍어왔었어. 병원에서 우리 세 명이 가족이 되었다는 게 가장 실감 나는 때였다. 영시가 태어난 그 하루, 24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어. 거의 일주일처럼 느껴질 만큼 높은 밀도의 하루였어.​​


엄마는 영시가 태어난 그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어. 수술실에서 영시 울음소리가 들리고, 무사하길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거든. 몇 분 후에 간호사분이 영시를 딱 보여주는데. 정말 너무 예쁜 거야. "와 예쁘다." 이 네 글자만 생각이 났어. 그러고 간호사분이 젖 물려 보시겠냐고 묻는데, 엄마도 모르게 당장 해주세요, 같은 마음이 들더라. 사실은 아빠가 수술실에서 젖도 물릴 수 있다고 알려줬을 때, 엄마는 괜히 겸연쩍은 마음이 들어서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랬던 엄마가 바로 "네!"라고 했지. 그리고 영시 입술을 엄마 가슴에 갖다 댔는데. 영시가 1초 정도 멈칫하더니 이내 그 자그마한 입을 벌려서 물려고 하는 거야. 그런 영시를 보자마자 '다 줄게, 다 가져가'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어. 내가 나 같지 않은 순간이었고, 생각 밖의 마음이었어. 그 순간을 기점으로 엄마는 엄마가 된 것 같아. ​


신생아 때 사진을 찬찬히 다시 보다 보니. 그때의 아빠 엄마의 감정, 분위기가 고스란히 다시 생각나. 벌써 추억할 거리가 생기다니 새삼스럽기도 해. 사람들이 괜히 말하는 게 아니네. 정말 시간이 빠르게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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