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공장

대학원 재밌다

by 이프루


학식은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지금도 사실 좀 그렇다. 같은 학교를 오래오래 다니니 매년 보는 그 쟁반, 그 식기, 그 메뉴가 지겨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만 보내는 현대의 대학원생으로서 김치찌개와 돈가스, 제육볶음 등을 그렇게 자주 먹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런 메뉴만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우리는 정말로 샐러드 공구를 하기로 했다. 만들어진 샐러드를 각자 사는 건 너무 비싸니까 생채소를 사서 n인분의 샐러드를 만드는 것으로.


역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던가 배달을 시켰던가... 채소를 사 와서 연구실 미니냉장고에 넣어 두고, 합의된 시간이 되면 (점심이기도 하고 저녁이기도 하고 그냥 오후 4시쯤이기도 했다) 누군가 큰 보울과 도마를 꺼내 와서 채소를 씻고 썰어서 각자의 락앤락통에 넣어 줬다. 그때 이것저것 맛있고 신기한 것을 많이 사다 주던 선배 G가 사 와서 아보카도를 처음 먹어 봤다. 내가 올리브를 좋아하는지도 그때 알았다. 누군가 코스트코에서 사 온 치즈와 올리브유도 정말 맛있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장블랑제리의 크림빵을 나눠 먹었다는 거지만. 빵은 거의 껍질만 있고 안에 크림과 팥이 가득 들어 있는 그것을,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누군가는 꼭 캠퍼스에 올라올 때 빵집에 들러 사 오곤 했다. 그러면 또 접시와 과도(!)가 나와서 누군가 1/n 조각으로 나눠 주고. 그러고 보니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었던 것 같다. 아무튼 채소를 먹긴 먹었다.


한동안 샐러드 공구 아닌 파티를 하다가 한두 명씩 졸업을 하고 공구에서 빠져나가고 하면 중단됐다. 그랬다가 또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오고, 또 한동안 같이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대학원 다니면서 그걸 두세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샐러드 공구였다.

코로나 직전의 여름에서 가을쯤이었다. 선배 B가 총대를 멨다. 집 근처 마트에서 채소를 사서 들고 와서 샐러드를 만들어 주고 참가자가 재료비를 지불하는 식으로 시스템이 바뀌었다. 이때의 이름은 '샐러드 계'였던 걸로 기억한다. 참가자 각각이 좋아하는 채소, 싫어하는 채소가 따로 있어서 재료비가 서로 다르게 계산됐던 것 같다. 양상추, 양배추, 감자, 오이, 파프리카, 올리브(2종), 병아리콩, 아몬드, 치즈, 블루베리, 사과, 자두 등등. 1리터짜리 올리브유 통을 연구실에 두고 마음껏 뿌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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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우리 모두 공부 말고 모든 것이 재미있을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엄청난 일이었다. 따로 만들어서 파는 샐러드가 비싼 이유가 다 있는 것인데. 그 와중에 선배는 웃길 정도로 능숙한 손놀림으로 n개의 도시락을 만들어냈다. 흡사 샐러드 공장이었다.


화려한 손목 스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때 수많은 굿즈를 뚝딱 만들어내던 동기 F 등판. 샐러드 계의 회원권을 만들었다. 야구점퍼, 돕바, 머그컵 등등 쏟아지는 학과 굿즈 안에서 샐러드를 먹은 단 n명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카드였다.

유효기간이 2020년 1월까지인 이유는 선배가 그때 졸업을 할 생각이었어서. 그리고 선배는 진짜로 박사과정을 끝내고 졸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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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샐러드 도시락 생각이 난다. 연구실에 냉장고도 있고 다 있는데. 학기가 시작하면 집에서라도 싸가 볼까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학식이나 캠퍼스 근처 (반경 2km) 식당에 사람이 많지 않지만, 개강하고 나면 어디서든 먹기가 쉽지 않을 테니. 그리고 근처 역까지 나가면 또 마라우육면을 먹고 싶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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