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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10. 2016

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그는 분명 문제적 소설가다

타블로 <당신의 조각들>


타블로, 그는 분명 문제적 소설가다


이적의 <지문사냥꾼>과 비슷한 시기에 이 소설집이 나왔을 때 나는 먼저 <지문사냥꾼> 쪽을 집어 들었다. 이적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었다. 특히 그가 쓰는 가사들에 매료된 채로 10대를 보냈던 나였다. 그가 틈틈이 써내려간 소설과 같은 글을 모았다는 <지문사냥꾼>은 이적다운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숱한 소설들을 읽어온 나에게 이적의 소설은 소설로서 가치를 논하기에는 미묘한 부분이 많았다. 확실한 건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문사냥꾼>에 대한 실망은 애꿎은 타블로에게 이어졌다. <당신의 조각들> 뒷면에는 이적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다. 나는 책을 사지 않았다. 타블로의 소설은 그렇게 내게 잊혀졌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 타블로에게 일어났다. 


세월이 흘러 어느 헌책방에서 다시 타블로의 책 앞에 멈춰 섰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어온 한 뮤지션의 속내가 궁금해졌던 것일까. 담담하게 책을 뽑아 카운터 앞에서 계산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무심히 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침실에 틈이 있는지 항상 확인하곤 한다." 

- 안단테 -


첫 문장을 읽고, 미안하지만 이것을 정말 타블로가 썼을까 의심했다. 곧바로 다른 단편들의 첫 문장들을 확인했다. 


"쥐 한 마리가 묵직한 발걸음으로 마크의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들어와, 바닥에 던져진 셔츠와 한 장의 팬티 위를 가로질러 종이 더미에 올라앉았다." 

- 쥐 -


"상상하곤 했다. 지금쯤이면 내가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성공했을 거라고." 

- 승리의 유리잔 -


"샌드라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잭슨 폴록의 그림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다." 

- 우리들 세상의 벽-


"리치몬드 워커는 자신이 위대한 운명으로부터 밀려난 것이라고 느꼈다." 

-최후의 일격- 


종로 3가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한 청년이 상기된 표정으로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며 어떤 한 페이지에서 멈춰 유심히 바라보다 다시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다 멈추는 일을 반복했다. 서울역에서 내린 후 경의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잠이 드는 순간까지 타블로의 글은 빠르게 내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말 잘 쓴 소설이다. 이 정도면 이미 프로다. 괘씸하다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일주일에 걸쳐 느긋하게 책을 읽는 나답지 않게 <당신의 조각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서 이틀 만에 읽어냈다. 멈출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있기도 했고, 그가 적어 내려간 문장들에 흠뻑 매료된 탓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진짜였다. 


최근에 나는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다시 동화와 이야기 속으로'에서도 그의 글을 극찬했다


그의 글에는 미국이나 영국 작가들의 소설에서 감지할 수 있는 특유의 가벼운 공기와 위트, 그리고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거기에 타블로만의 독특한 푸른빛 우울감이 더해져 묘한 색채를 띠는 것이었다. 종일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듣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 


타블로의 재능은 정말 어디까지일까. 이 탁월한 천재가 더 이상 한국사회의 보수성과 폐쇄성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독보적인 그의 음악만큼이나 그의 글은 독보적으로 빛나는 것이었다. 그가 소설을 계속 쓰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의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다면 일상의 재미를 하나 더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당신의 조각들> 제목마저 지나치게 멋진 이 작품집은 단순히 연예인의 작가 데뷔 서적 정도로 묻혀도 될 정도의 책이 아니다. 그의 조각들이 앞으로 더 많이 우리의 조각들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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