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SF. '바이 바이 메모리얼' Code 1
“하정아, 면접은 잘 봤어?”
“몰라, 이상한 거만 잔뜩 물어서. 한전 들어가는데 꼭 인생관이 필요한가? 지들이 내 인생을 알아서 우짤라고.”
“그러게.”
K대의 풍경은 겨울 햇살에 은은히 물다. ‘미래사회와 조직’이라는 수업을 같이 듣는 창헌과 나는 굳게 닫힌 강의실 문을 바라보며 좌담회를 열고 있는 중이다. 주위에 불평을 늘어놓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다 말다 한다. 나는 불평하기도 귀찮아 가만히 강의실 문만 바라본다. 밤새 취업준비를 했더니 자꾸 까막까막 잠이 온다. 창헌은 그런 걸 전혀 모른다는 양 계속 뭐라고 조알댄다.
“그러니까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말고, 천천히 맘 편히 생각해. 넌 꿈같은 거 없어? 꼭 해보고 싶다 싶은 그런 일.”
‘그러니까’ 이전의 얘기가 기억이 안 난다. 결국 근거 없는 속 편한 소리로 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다.
“난 급하단 말야! 내년 이면 벌써 스물넷인데 빨리 취직해야지.”
“스물넷이면 젋잖아 아직.”
웃기는 소리. 웃기는 소리다. 허나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교수님은 오지 않을 모양이다. 벤치에서 일어난다. 창헌이 따라 일어난다.
“가려고? 어디?”
“원서 써야지.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랑 기타 등등”
“이번엔 어디?”
“클리어라고 청소기 만드는 회사. 판매직원이라도 할까 봐.”
내 대사를 끝내고 나니 시야가 흐려지며 그의 모습이 흐리마리 해진다. 이름이 뭐라고? 차.......
꿈을 꿨다. 매번 같은 꿈이었다. 인지심리 센터라도 찾아가 봐야 할 듯했다. 그냥 해본 소리였다. 오늘은 업무 차 아메리카 시티의 로봇공학 연구소에 가보아야 했다. 아시모프 박사에게 새로 개발된 클리어봇 XP-10T의 샘플을 받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 박사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 벌써 정오였다. 방 안에는 어쩐지 음침한 공기.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사람에게 펌프프라이밍을 맡길 수밖에 없는 회사가 참 불쌍했다. 원래 아시모프 박사는 우리 기업의 기술개발부 소속의 A급 과학자들의 조수였다. 지구 붕괴 조짐이 발견되었을 때 정부의 요청으로 A급 과학자들이 지구로 갔고 지구 붕괴의 소용돌이에 모두 휩쓸리고 말았다. 조수였던 그는 늦잠을 잤던 게 행운이었다. 아시모프 박사는 생긴 게 조금 어벙하고, 행동이 느리고, 약간 변태끼가 있으며, 잠이 많고, 자폐적 다혈질에다, 지저분하다는 사소한 결점들을 빼면 괜찮은 과학자이자 기술자였다.
“클레어 씨 오늘은 더 섹시해 보이는데 오늘 밤 어때요?”
소심하고 음습한 목소리로 진담 같은 농을 걸어오는 그, 나는 많이 겪어봤으므로 여러 가지 대응책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당신 걸로 된장 찍어 먹을 반찬거리라도 되겠어요? 샘플은 다 끝났나요?”
그는 만족한 듯 빙긋 웃는다. 변태가 맞다.
“그럼요. 이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