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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31. 2016

21세기의 문명인은 어떻게 인디언을 죽이는가 2(완)

상처 난 무릎, 운디드니 이야기

“이 점만은 분명히 이해해야 하네. 우리는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말일세. 그건 우리가 미국이나 미국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이네. 우리에게 그건 전쟁과도 같은 일이네. 우리가 우리 존재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몰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네. 우리는 잘못된 생각과 가짜 인디언 그리고 우리를 백인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이 우리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선의의 백인들에 의해 파멸되고 말 것이네.”


- 켄트 너번 <상처난 무릎, 운디드니> 80p


지난 2008년 캐나다 정부는 과거 역사 속에서 거북섬 원주민을 탄압한 사실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예전에 거북섬 원주민의 알콜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문명인들은 죽었다고 생각한 인디언들이 알콜중독자가 되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그들은 살아있는 거북섬 원주민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을 알콜중독에서 구제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련했다. 그때는 아직 모든 거북섬 원주민이 현자의 지위를 가지기 이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거북섬 원주민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체로키족이 부족 자치를 위해 카지노를 운영한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물론, 카지노를 운영하는 인디언을 흉내 내고 싶지도 않겠지.


그대는 나바호족이나 아파치족 원주민이 주유소를 운영하거나 버스 운전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나바호족이나 아파치족이 전통의 복장을 하고 그랜드 캐넌에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더욱 행복할 것이다.


라코타족의 여성이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며 미국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이뤄쿼이족의 여성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서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녀는 진짜 인디언이 아니야!라고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체로키 자치족이 운영하는 카지노


“나는 빡빡머리 인디언이니까. 나하고는 얘기하고 싶어 하지도 않지.”


노인이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내 말총머리를 보고 자기들의 영혼의 형제쯤 된다고 생각하지. 짧은 머리를 한 그로버는 그냥 보통 중년 남자로만 보고 말일세.”


(중략)


“심지어 독수리 깃털을 걸치고 오는 사람도 있지요. 독수리 깃털은 전쟁에 이겨서 손에 넣거나 참전용사에게 받은 것이 아닐 때에는 결코 걸쳐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모방자들 중에는 독수리 깃털을 제로니모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자들이 있어요.”

“빌어먹을, 나는 박제한 독수리 머리를 허리춤에 매단 사람도 본 적이 있네. 독수리 머리를 통째로 말일세!”


- <상처난 무릎, 운디드니> 143, 145p


또 그대는 머리를 길게 기르지 않거나, 까만 머리가 아니거나, 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거북섬 원주민을 향해 감히 호통을 칠지도 모른다. “저들은 변절자야!”라고. 그대는 모르는 것이다. 거북섬 원주민은 원래부터 황인, 백인, 흑인, 홍인이 모두 섞여서 함께 어우러져 살았다는 것을. 왜냐하면 당신이 책에서 읽은 죽은 인디언은 모두 까맣고 긴 머리에, 붉은빛(흑백사진을 보았겠지만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책에서 거북섬 원주민들은 얼굴이 붉다고 하니까.)이 감도는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니까.


어쩌면 그대는 인디언을 사랑하는 마음에 미국으로 날아가서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가 사진 촬영을 해대며 원주민 노인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하겠지. 만약 그 노인이 당신이 건넨 손을 후려치고 땅바닥에 침을 뱉으며 가버리거나, 보호구역 거리의 원주민들이 당신과 똑같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캔 맥주 따위를 마시며 그대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역시 ‘진짜 인디언은 다 죽은 거야’라고.


그대는 문명인이 만들어놓은 죽은 인디언만을 사랑한 것이다.

거북섬 원주민들은 여전히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살아 남아 그들의 권리와 존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대에게 말한다. 그대는 사랑을 아느냐고?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어야지 비로소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


세월이 흐르고 흘렀지만 거북섬(아메리카 대륙)에 스며든 원주민의 피는 아직 채 마르지 않았다. 문명인들은 대부분 살아있는 거북섬 원주민을 잊었지만 어머니 대지만은 그들을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 죽은 인디언을 사랑하는 문명인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어머니 대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까만 머리를 길게 길러 땋고 있지 않아도, 그들이 붉은빛이 도는 피부를 하고 있지 않아도, 그들이 대머리이거나, 흑인이거나 백인이어도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진짜 인디언이란 무엇인가? 진짜 거북섬 원주민이란 무엇인가? 그 답을 아는 건 그대와 내가 아니다. 그 답을 아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거북섬 원주민들뿐이다. 그 질문은 그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질문이 있는 것이다. 진짜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진짜 몽골리안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우리는 감히 살아있는 거북섬 원주민들에게 ‘진짜’를 논할 자격이 없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대도 과거의 백인들처럼 또 다른 학살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생각해 보게. 백인이 자기는 일부는 흑인이고 일부는 멕시코인이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나? 물론 없을 걸세. 하지만 자기가 일부는 인디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천에 깔려 있네. 대개 그들은 자기 할머니나 증조할머니가 인디언이라고 말하지. 자기 할아버지가 인디언이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네. 자신의 배경에 인디언 남자가 속하는 건 원치 않는 걸세. 인디언 할아버지라면 어쩌면 도끼 같은 걸 휘둘렀을지도 모르니까.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가족에게 현명한 지혜를 가르쳐준 늙은 인디언 여인일 뿐일세. 그리고 그 할머니들은 포타와타미족이나 키라카우아족 혹은 틀린기트족은 결코 아니어야 하네. 주로 체로키족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 체로키족은 무언가 낭만적인 부족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자기 집안에 체로키족의 할머니가 있었다고 말하는 백인을 나는 한 백 명쯤은 만나보았네.


그런데 말일세,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네! 그들은 그 말이 사실이기를 너무나 강렬하게 바란 나머지 스스로 믿게 된 거라네. 대부분은 그 정도에서 그만두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그들은 머리카락을 길러 땋고 주술 의식도 찾아다니지. 어쩌면 사기꾼 주술사의 강연회도 들으러 다니겠지. 그러면 곧 새로운 인디언이 탄생한다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인디언 철학을 떠벌리면서 인디언의 의미를 더욱 왜곡시키고 다니게 되겠지.


너번, 내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두네만 인디언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네.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은 우리를 파괴하려고만 했어.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사람들이 끼고 싶어 하는 유일한 집단이 되었네. 자네는 외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 <상처난 무릎, 운디드니> 81p


우리는 그들 스스로 그들이 해답을 찾기를 기다려주어야 하며, 살아있는 그들이 내린 해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선교사들처럼 그들의 종교를 바꿀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같은 지구인으로서, 백인과 닮아가며 그들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어리석은 문명인으로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거북섬 원주민을 사랑하기 위해 그대가 인디언이 될 필요는 없다. 그대에게 사랑받기 위해 거북섬 원주민이 그대가 원하는 인디언이 될 필요도 없다. 그대는 그대로서, 거북섬 원주민은 거북섬 원주민으로서 자기의 모습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면 족하다.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거북섬 원주민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미원주민과의 문제를 풀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추진한 바 있다. 사진은 모호크족과의 대담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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