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하드보일드 크리스마스 4

연작 SF. '바이 바이 메모리얼' Code 1

by 장명진

나는 재빨리 발길을 돌려 리버풀을 나왔다. 논스톱으로 차에 올랐다. 엑셀레이터. 차는 잉글랜드 시티의 도로를 ‘Help!’를 외치듯 빠져나갔다.


심한 두통이 일었다. 집에 와서 XP-10T를 부엌에 놓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비틀즈 기념 음반을 사오지 않았음을. 나의 미련한 영혼을 문질러버리고 싶다.


“모니터 온. 뮤직. 비틀즈. 러버(Rubber) 소울.”


‘드라이브 마이 카’ 가 흘러나오며 모니터에는 주사 맞고 반쯤 맛이 간 폴 메카트니의 얼굴이 지난다. 약 먹고도 안 되는 놈도 있으니, 비틀즈는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괜찮다. 이런 생각을 한데도 국가 보안법 위반 마냥 잡혀가진 않았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서 생각까지 해킹당하지는 않았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과학을 너무 대단하게 보았던 것 같다. 결국 과학이 알아낸 거라고는 ‘모르겠다’ 뿐인데도 말이다.


“그래, 너도 위대한 과학의 산물이지? 어디 좀 볼까? 클리어봇 온!”


로봇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명령어를 말했다. 마찬가지. 둥그렇던 통증이 머리의 한 곳으로 쏠리는 듯했다. 우뇌. 어째서 항상 우뇌로 고통이 집중되는 걸까. 감상적인 생각이라곤 전혀 하고 있지 않은데. 통증이 더금더금 더해졌다. 침대로 가 누웠다. 어느 새 노래가 ‘노르웨이의 숲’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땐 나 혼자였어

그 새는 날아가 버린 거야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모니터 오프! 오프!”


모니터는 꺼졌지만 방안의 불은 그대로였다. 명령어 인식이 잘 안된 듯.


“오프! 오프! 오프!”


꺼졌다. 방안의 불도. 냉장고도. 가습기도. 공기 청정기도. 디지털시계도. 지닌 내 영혼도. 그때는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 보다는 말에 힘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자, 하정아. 네가 좋아하는 거. 비틀즈 한정판이야.”


남산 타워의 벤치. 내 생일이기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 그냥 왠지 어느 순간 눈 앞의 것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미처 내가 못 본 것들에 얼마나 억울한 기분이 들까. 그런 생각이 든 것뿐이다. 일일이 가보긴 힘드니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고 대충 다 본 셈으로 치는 것이다. 편리와 효율성. 그것만이 지구의 유일한 진리 아니던가. 인간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끙끙 짊어지고 태어난 것 아니겠는가. 비틀즈는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하다. 그건 창헌도 마찬가지다. 일하기도 바쁜 세상에 사랑을 곁들이기는 우리가 샴쌍둥이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멀고도 바람이 부는 이 길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차를 살 수 있는 자는 단 하나 분. 생각해 보라. 어릴 적의 운동회를. 이인삼각 보다는 100미터 달리기 쪽이 기록이 좋지 않은가. 100미터는 진지하고, 이인삼각은 코미디다. 어른들은 내게 인생은 진지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넌 인생이 그렇게 쉬워 보여?”

“무슨 얘기야?”

“취직 안 해?”


창헌은 피식 웃는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좋으면서 싫다. 야, 인생은 진지한 거라니까.


“하정아, 전에도 말했듯이 내 꿈은 훌륭한 뮤지션이 되는 거야. 중학교 때 처음 비틀즈를 듣고 그렇게 다짐했어. 너 보기엔 그럴지 몰라도 나 우리 클럽에서 제일 인기 있는 기타리스트야. 내가 쓴 노래도 많이들 좋아해주고, 이 순간의 행복을 나는 소중히 하고파.”

“그래서 얼마 버는데? 누가 때려치우라니? 그냥 취미로 해. 직장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

“내가 하고 싶은 건, 하정아. 내가 정말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건 기타를 치는 것뿐야. 난 그게 제일 좋아.”

“어린애는 정말 싫어.”

“......”


창헌은 손에 든 비틀즈 씨디를 만지작거린다. 나는 갑자기 암전 돼버릴 것 같은 서울의 야경을 바라본다. 그 깊숙한 거리의 사연 따위는 알 바 없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있지, 그 아름다움을 이루는 세세한 요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헤어지자 우리.”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케이블카 방향으로 내려간다. 창헌은 따라오지 않는다. 한정판 비틀즈 씨디는 앞으로 다시 구하기 힘들 것이다. 모든 지나간 사랑들처럼. 어제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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