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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y 19. 2016

저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근데 왜 여혐이라고 하죠?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즉문즉설 1

*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즉문즉설'은 가상의 문답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던져지는 가상의 질문들은 대체로 웹상에서 흔하게 보았던 남성들의 질문이나, 제가 일상에서 접했던 남성들의 궁금증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Q. 저는 여자를 정말로 좋아하는 보통 남자입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은 왜 제가 여자를 혐오한다고 말하죠? 저 여자 싫어하지 않습니다.


혐오의 반대말은 '좋아함'이 아니라 '인정'입니다.


사회현상을 규정하는 학술용어 중에는 사전적 정의와 조금 결이 다른 의미를 갖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만 해도 그렇죠. 우리말로는 '여성주의'로 번역이 되어, 마치 생물학적인 여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사상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여성주의'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여성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것, 즉 부드러움, 아름다움의 추구, 가사노동, 살림살이, 힘이 약한 것, 소외된 것, 인간에 의해 희생되었던 자연 등등 '물리적 힘과 권력을 가진 남성' 주도 사회에서 업신여겨졌던 가치들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자 사상입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가치 회복 대상에는 생물학적 여성뿐만 아니라, 여성적이라고 평가받았던 남성들, 그리고 소외받았던 동성애자들도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이런 짤이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여성을 좋아하는 것과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됩니다. 내가 남성으로서 여자친구도 많이 사귀어 봤고, 여자사람 친구 또한 많이 있더라도,


'여자들은 정치의식이 없어, 여자들은 자기 이익만 내세우고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해, 여자들은 명품만 보면 환장해, 여자들은 피해의식에 쩔어 있어, 여자들은 속물적이야 돈 많은 남자만 좋아해, 여자들은 내가 노력해도 얻기 힘든 것을 손쉽게 가져가고 있어, 여자들은 별것 아닌 가사노동으로 생색내면서 내가 즐기지 못하는 여가를 즐겨, 여자들은 책임질 게 없으니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 여자들은 성욕이 없어, 여자들은 자기가 유혹해놓고서 책임은 지지 않아...'


등등등 '여자들은, 혹은 요즘 여자들은...'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수많은 편견들을 의식 속에 내재화하고 있다면 당신은 여성을 나와 동등하게 욕망과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여성혐오입니다.



여성들을 좋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실수하고 잘못 판단하고, 어리석은 욕망을 지닐 수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면 됩니다.


IS와 같은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비이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테러를 가하고, 이 세상에서 말소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상대를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타 종교 혐오주의자라고 규정합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를 동등한 사람으로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딘가 잘못된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서 동성애자를 바라보지요. 그래서 사회학적 언어로 동성애혐오자, 호모포비아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또 인종차별주의자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흑인혐오자, 유색인종혐오자로 규정할 수 있겠지요.


이들 - 혐오에 빠진 이들 - 은 다음과 같은 생각의 패턴을 보여주곤 합니다.


비이슬람 종교의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 저것 봐! 이슬람을 믿지 않으니까 저렇게 영혼이 타락했어!


동성애자가 성병에 걸렸습니다 -> 저것 봐! 더러운 것들이 꼭 더러운 짓을 하고 다니니 저런 일이 생기잖아.


흑인이 교통법규를 위반했습니다 -> 저것 봐! 문명사회에서 살 수 없는 무식한 인종들이라니까


여성이 돈이 많은 상대와 결혼했습니다 -> 저것 봐! 여자들이란 돈 냄새만 쫓아다니는 속물들이라니까


여기서 뭐가 문제라는 건지 알쏭달쏭하신 분들은 자기 속에 남 모르게 자리 잡은 '혐오'의 문제를 좀 더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병에 걸리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돈이 많은 상대와 결혼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쯤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실수이거나 선택들입니다. 즉, 이러한 행동들이 비이슬람이라서, 동성애자라서, 흑인이라서, 여성이라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슬람도, 동성애자도, 흑인도, 여성도 아닌 여러분도 살면서 언제든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고,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거죠.


하지만 이 '인간적인 행동'들을 비이슬람, 동성애자, 흑인, 여성들 등 특정한 그룹이 행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여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혐오주의자입니다.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 페미니스트를 포함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혐오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익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인정해달라는 주장에 가깝습니다. 즉, 이것은 정말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을 요하는 처절한 호소입니다.


이틀 전 일어난 남성에 의한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해 상당 수의 남성들이 '아주 특별한 개별 남성의 잘못을' 왜 남성 전체에게 덮어 씌우느냐고 '몹시' 억울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억울함을 여성들은 수 십 년, 수 백 년, 수 천년을 겪어 온 것입니다. 여성들은 아직 남성들을 '진정으로' 혐오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진정으로 혐오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아마도 저의 이 글을 살아서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여성들이 남성을 진정으로 혐오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여성들에 대한 혐오를 멈추는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성들을 좋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실수하고 잘못 판단하고, 어리석은 욕망을 지닐 수 있으며, 자기 판단에 따라 나를 비웃을 수도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면 됩니다.


2016. 5. 1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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