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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un 02. 2017

신여성이 있던 자리 3(완)

페미니즘 읽기 4-3

ㄷ. 사회주의 - 연애무용주의


사회주의 계열의 신여성들은 계급이 있는 한, 진정한 의미의 평등한 연애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연애담론에 관심을 두지 않고 먼저 계급의 타파를 주장했다. 이들에게 오히려 연애는 혁명의 장애물이었다. 근대 자본주의 문물과 자유연애에 무관심한 덕분인지 이들은 페미니즘 활동을 전개했던 여성의 집단 중 친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운 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이들 또한 이념의 문제로 인해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이 계열의 신여성들은 직접 항일무장투쟁에 나서는 등 당대에 가장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였다. 


영화 <암살> 속 안옥윤은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약하여 탄생시킨 인물이다.


이화림 지사. 이봉창, 윤봉길과 함께 '한인 애국단'의 트로이카 중 한 사람. 당대의 저격수였으며, 임시정부의 재정을 담당했던 중책이었지만 사회주의자였기에 기록되지 못했다



2) 낭만적 사회, 그 유리천장 위의 세계


서구와 일본의 근대문물에 대한 강렬한 동경. 서구적 옷차림, 서구적 머리모양, 서구적 걸음걸이 등 물질적인 면과 서구의 종교, 서구의 사상 등 정신적인 면까지 당시의 신여성들은 서구와 일본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환상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에 따라 서구의 발전된 모습과 낙후된 조국의 모습 사이의 크나큰 괴리로 인해 번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여성들은 여성이 남성과 서로 평등한 가정생활을 누리며, 저마다 자신의 일을 갖고 남성과 동등하게 대접 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더 이상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하는 여성이길 바랐다. 많은 신여성들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에, 남성 가부장제로부터도 독립해야 했다. 


일제강점기 여성 교육의 목표는 '현모양처' 양성이었다


여성의 자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었지만, 여성에게 행해지는 교육이란 '가사노동 교육'이었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여성에게는 동등한 교육이 행해지지 못했다. 신여성들이 꿈꾸었던 사회는 분명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차별이 없는 성평등 사회였다. 단지 꿈꾸는 것만이 허락되었던 당대의 여성들에게 서구와 근대 일본 제국주의 사회의 문명화된 모습은 낭만적인 색채로 포장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 낭만적 사회,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에 투신했다. 끝내 다다를 수 없었던 꿈의 세계 앞에서 좌절한 여성들은 자기를 부정하거나, 스스로 목숨까지 내려놓고 말았다. 자화상을 서양인의 모습으로 그렸던 나혜석, 일본을 통해 서양을 동경하고 이탈리아 유학을 평생 갈망했던 윤심덕. 다음 세대인 전혜린도 그들이 이루지 못한, '이룰 수 없는 동경'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바로, 시대의 한계가 여성에게 끝없이 재생산한 유리천장이었다. 


시대의 벽 앞에서 스러진 두 여성 예술가. 윤심덕과 전혜린.



4. 끝나지 않은 신여성의 역사


신여성. 새로운 여성의 역사는 과연 1930년대 후반 신여성이 모던걸로 대체되면서 모두 마감되어 버린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모습의 한국 사회,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여성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졌지만, 그들이 꾸었던 꿈과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짧게 꽃을 피웠다가 져버린 신여성의 꿈과 의지는 해방 이후 다음 세대에 태어난 전혜린에게서 다시 피어났다. 


괴테,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를 가슴에 품었던 독문학가 전혜린


어머니 시대의 속박과 투쟁, 이어진 비극의 결말 뒤에 태어난 전혜린은 앞 세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짙은 페시미즘의 DNA를 이어받았다. 여성으로서 결코 과거에 끌어당겨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새장을 벗어나 세계를 향해 날아가고자 했던 신여성들의 한은 마치 전혜린의 가슴 속에서 모두 되살아난 것만 같다. 전혜린은 끊임없이 평범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공고한 가부장 사회의 벽 앞에서 온갖 컴플렉스에 시달려야만 했던 전혜린의 모습은 1920년대를 살았던 신여성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전혜린은 신여성이 겪었던 그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겪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 모든 괴로움은 충분히 끝나지 않았다


성평등을 외치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때로는 여성 자체를 부정하고 여성이라는 껍질을 벗어버리길 갈망하고, 또 한 편으로는 전통적인 여성으로서 육아의 기쁨을 느꼈던 전혜린의 모순은 모든 앞서 간 1세대 페미니스트의 모순이자, 고뇌가 아니었을까 싶다.*


*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부정하고, 가부장적 남성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는 것(명예남성이 되는 것)이 여성이 사회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었던 그 시절. 1세대 페미니스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 속의 여성 젠더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여성에게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과도 같았다.


전혜린 역시 그 고뇌를 끝내 해결하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얼마나 많은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가. 신여성이 살았던 시대와 전혜린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우리는 과연 과거보다 진보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앞의 생을 산 이 새로운 여성들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사회가 신여성의 시대보다 그닥 진보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신여성의 시대로부터 약 100년이 흘렀지만 여성이기에 겪는 모든 괴로움은 충분히 마감되지 않았다


사회는 반드시 시간의 흐름과 같이 과거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그대로 현재에 멈추어 안주하기도 하고,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퇴보하기도 한다. 사회가 시간과 함께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노를 저어야 한다. 그렇다면 힘차게 노를 저어 줄 천재적인 신여성을 다시 기다려야 할까?


아니다. 이제는 생물학적 남성도, 여성과 함께 노를 저어야 한다. 신여성은 이미 오래된 미래다. 1920년에 신여성은 이미 출현했지만, 아직 신남성은 충분히 출현하지 않았다. 먼저 미래를 맞이한 여성들에게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부가하지 않기 위해 나와 같은 남성들은 함께 미래로 노를 저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1920년에 그대로 머무르며 오히려 더 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온전한 미래를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함께 가자, 21세기의 미래로.*


* 마지막 문단은 2017년 5월의 시점에서 다시 썼습니다.



2005. 봄. 멀고느린구름.

* 2005년 초고를 기반으로 각주 등 일부 내용을 오늘날에 알맞게 수정했습니다.




참고도서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생각의 나무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 이배용 외. 청년사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 김경일. 푸른역사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 최은희. 문인재

<낭만적 사랑과 사회>재크린 살스비. 박찬길 역. 민음사

<전혜린 이야기>이덕희. 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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