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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Apr 25. 2018

유리의 성 / 안녕, 우리가 하나이지 않은 세계

마벨 청 <유리의 성>


안녕, 우리가 하나이지 않은 세계 


이번 주 금요일이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처음으로 판문점의 남측 지역인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2000년, 엄밀하게는 20세기 말이면서, 21세기의 시작이기도 했던 그 해 6월 15일에 나는 대학생 기숙사 휴게실에 앉아 후에 베프가 될 친구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의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았다. 친구의 속은 알 수 없으나 내 가슴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남과 북 우리가 하나인 세계가 비로소 시작되는구나. 그 역사적인 순간 바로 코앞에 내가 도착해 있구나. 곧, 서울역에서 영국행 기차표를 구할 수 있겠구나. 평소 꿈을 거의 꾸지 않는 나는 정상회담을 본 날 이후 이례적으로 꿈을 꿨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 특급 열차를 타고 러시아의 동토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열차의 밖으로는 눈의 바다가 있고, 그 설평선 위에서 두 마리의 사슴이 열차를 따라잡겠다는 듯이 힘차게 달렸다. 꿈속의 나는 그 사슴들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꿈은 거기서 끝났다. 꿈속의 나는 영국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둘로 나누어진 세계에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분명한 둘이 되어갔다. 언젠가 바로 내 코 앞에 있었던 세계는 한참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영화 <유리의 성>의 이야기는 바로 영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유리의 성>은 하나의 세계 속에 있었던 두 사람이, 각자의 세계로 흩어졌다가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라라랜드>를 통해 보았던 흔한 사랑의 이야기다. - <라라랜드>는 <유리의 성>의 헐리드우드식 재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  우리는 누구나 뜻밖에 만나고, 원치 않게 헤어졌다가, 어느날 불쑥 재회한다. 우리가 하나였던 순간의 마음이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었느냐에 따라 어느날의 재회는 우연이 되거나, 운명이 된다.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의 영국령 홍콩대학 캠퍼스에서 강하게 서로에 이끌렸던 두 사람 ‘항생(여명)’, ‘연루(서기)’는 어느날 불쑥 찾아온 재회의 순간을 운명이라고 여겼다. 붙잡지 못했던 기회를 다시 붙잡기 위해 각자의 가정을 뒤로 하고, 두 사람만의 공간인 ‘유리의 성’을 지어 밀회를 나눈다. ‘유리’라는 소재에서 알 수 있듯이 유리의 성은 투명해서 쉽게 들통 나고, 깨어지기도 쉬운 연약한 성이다. 두 사람이 만든 성은 왜 하필 ‘유리’의 성이어야 했을까.  


여명과 서기의 리즈시절, 그들의 찬란히 빛나는 미모를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은 미국의 히피운동과 함께 세계의 젊은이들을 흔들었다. 자본, 정치-사회적 권위, 인종, 성별 등 그 모든 기득권으로부터 억압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외쳤던 젊은이들 속에 항생과 연루도 있었다. 체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시위대의 전면에 나섰던 항생에게 연루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그의 청춘과 열망이 가장 찬란히 빛나던 황금시절이었다.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했던 청년은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고, 미국인 국적의 아내와 아들을 얻는다. 영국령 하의 생활에 만족했던 집안의 청년은 홍콩에 남아 중국으로의 통합에 순응하며, 곧 중국 국적을 지닐 남편과 딸을 얻는다.  


 

반체제의 선봉에 선 항생과 체제에 적응한 가정 속에서 자란 연루



그럼에도 혹은 그러하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유럽이기도 하고, 중국이기도 했던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영원히 사라진다. 1997년 7월 2일부터 홍콩은 ‘하나의 중국’에 포함되었다. 항생과 연루가 지은 ‘유리의 성’은 7월 1일 이전의 홍콩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의 황금시절이 쏟아낸 뜨거운 빛이 만든 신기루 같은 성이었으니까. 하나의 중국으로 존재할 홍콩에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꿈과 사랑이 시작되어야 했다. 그래서 지나간 세대의 이야기는 다만 투명히 들여다볼 뿐, 쉽게 깨뜨릴 수 있는 성이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홍콩은 본래 중국의 영토였다가,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156년을 보냈다. 북한은 본래 우리와 하나의 국가였다가 일본의 침략과 6.25라는 비극을 통해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뉘어 73년을 보냈다. 남과 북 사이에 아직 충분히 알려진, 서로의 가슴을 흔들 사랑 이야기가 없는 것이 문득 아쉽다. 하지만 한편 다행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황금시절이 이제야 비로소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사랑과 꿈이 이제 시작될 수 있을 테니까.  


흘러버린 수십 년의 세월을 원망하듯, 항생은 잊혀지지 않을 명곡 ‘Try to Remember’를 부른다


유리의 성에 간직되는 영원한 사랑의 꿈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우리 역사에 어떤 결과를 남길지, 우리가 이제 어떤 세계로 진입할지 누구도 섣불리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비록 크게 흔들릴지라도, 조금은 아플지라도 우리가 하나이지 않았던 세계와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되었으면 좋겠다.  


안녕, 우리가 하나이지 않은 세계.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새 시대를 맞는 인사이기도 하다. 우리와 다른 우리를 맞이하는 인사, 우리 속에 다른 우리를 포함하는 인사,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둘로 공존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인사. 내가 당신을 품에 안는 인사. 곧 사랑의 인사다. 중국은 아직 홍콩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홍콩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로 중국의 체제에 융합시키려고 하는 시도들 탓이다. 우리는 북한을 충분히 사랑할 준비가 과연 되어 있을까. 이제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과거의 슬픔에 침잠하지 않고, 새로움 속으로 주춤거리며 나아가는 것이 진정 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일 테니. 항생과 연루의 자녀 데이빗과 수지의 시작처럼.  


한 세대의 인연은 비록 끝날지라도, 그 못다한 사랑의 꿈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곳에서 쏘아올려져 하나가 되는 불꽃처럼


2018. 4. 2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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