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4월 이야기>
2000년 봄, 강남역 근처의 영화관에서 <4월 이야기를> 보았다. 아직 우리나라엔 벚꽃 엔딩이 울려퍼지기는 커녕, 여의도 벚꽃 축제가 생기기도 전의 일이다. 경남 진해를 아는 사람도 드물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영화를 열다섯 번 보았다. 최전방 GOP 근무 등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세 번 정도를 제외하면, 매해 4월마다 마츠 다카코(4월 이야기의 주인공역)의 빨간 우산을 본 셈이다.
열여덟 해가 지났음에도 이 영화는 전혀 낡지 않았다. 여전히 싱그러운 4월을 머금고 있다. 한 해의 거의 대부분이 눈에 덮여 있는 훗카이도에서 도쿄로 유학을 오게 된 스무 살의 여성 니레노 우즈키에게 닥치는 일들은 사실 싱그러움과 거리가 멀다. 이삿짐을 가져다 준 업체 직원들에게 얼렁뚱땅 귀한 옷장과 소파 등을 넘겨줘버리게 되고, 첫 대학 친구라고 여겼던 이는 동아리 가입 권유 경품을 노리는 여자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간 극장에서는 성추행의 위기를 겪고, 외로움을 달래려 이웃집의 초인종을 눌러 보지만 낯선 이웃과 친해지는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우즈키를 둘러싼 모든 사람은 낯설고, 따뜻하지 않다. 도쿄의 거리에는 벚꽃이 훗카이도의 눈보라처럼 흩날리지만 마음의 온도는 고향보다 낮다.
<4월 이야기>를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고 유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4월도 전혀 싱그럽지 않았다. 변변한 집도 없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동아리방의 문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휴대폰도 없었기에 외로워도 친구를 만날 방법 같은 게 없었다. 꼭 나만 빼고 모두에게 봄이 온 것 같은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에 나는 남몰래 좋아하던 사람과 이 영화를 보고, 함께 양재 시민의 숲까지 아주 긴 거리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거리에서 벚나무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 어떠랴, 4월의 햇살이 곧 흩날리는 벚꽃이었다. 그 사람과 긴 거리를 걸으며 나눴던 이야기들은 모두 잊었지만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흔들리던 심장의 박동은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 흠모하던 이와 나 사이의 0.7미터 남짓 거리에는 그땐 몰랐던 청춘이 가득했었다.
영화의 초반에 우즈키는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지망한 이유를 질문 받는다. “이로이로...”. 우즈키는 여러 가지라고 얼버무리지만 이유는 단 세 가지. 무사시노 대학교에 야마자키 선배가 있기 때문. 무사시노당이라는 서점에서 야마자키 선배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 니레노 우즈키는 야마자키 선배를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 과연 이루어질지, 짝사랑으로 그치고 말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사랑에 기대어 우즈키는 싱그럽지 못한 4월의 현실 속을 정면으로 걸어나간다.
우리의 인생은 어느 시점에선가 늘 다시 엉터리로 돌아가버리기도 하므로.
다시 외로워지고, 다시 누군가의 미소에 두근거리기도 하므로.
나는 이제 많은 사랑의 결말들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의 해사한 미소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만으로는 사랑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래 기다린 사랑도 어디선가에선 그치고, 이루어졌다고 여겼던 인연에도 느닷없는 결말이 있다. 우즈키는 다음 해의 4월에도 야마자키 선배를 보며 여전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영화는 아무런 결말도 보여주지 않은 채 스탭롤을 올린다.
<4월 이야기>는 오직 ‘시작’만이 있는 영화다. 아니, 오직 ‘시작의 조짐’만이 있는 영화다. 그 탓에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엉터리 영화라거나 불완전한 영화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므로 이 영화를 열다섯 번이나 본다. 우리의 인생은 어느 시점에선가 늘 다시 엉터리로 돌아가버리기도 하므로. 다시 외로워지고, 다시 누군가의 미소에 두근거리기도 하므로. 4월은 2000년에 단 한 번 오는 것이 아니라, 2018년과 2019년에도 오는 것이므로.
다시 4월이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다시 울려퍼지고, 벚꽃이 흩날리고, 새학기의 커플들이 첫데이트에 나서고, 길고양이들은 볕이 좋은 곳에서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켤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하나도 싱그럽지 않은 4월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발견하지 못한 채 팔자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 할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그런 순간마다 <4월 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그러면 나조차 심어 놓은 걸 잊고 지냈던 씨앗 하나가 마음 속 어딘가에서 싹을 틔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쏟아지는 시원한 소나기 속에서, 마츠 다카코의 해사한 미소 속에서.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4월이 내게 왔으니까.
“성적이 나쁜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담임 무리야마 선생님은 기적이라고 했다.
어차피 기적이라고 부를 거라면,
난 그걸 사랑의 기적이라고 부를래.”
2018. 3. 26.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