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훈 <지금 만나러 갑니다>
타임머신을 생일 선물로 받는다면 미래로 가보고 싶다. 나는 항상 과거보다 미래가 궁금했다. 미래에 도착해 확인해보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랑할 그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는 언제 만나, 어떤 사랑을 하고, 그 마음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가. 그 사람의 이름, 그 사람이 사는 곳, 그 사람을 좀 더 일찍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일찍이 순정만화에 물들어 살았던 탓일까. 나는 언제나 단 하나의 사랑을 꿈꿨다. 그 사랑은 운명적이며, 치명적이고, 오직 단 하나로서 완결되어야 했다. 한 사람을 만나 처음 본 순간부터 영원히 사랑하며 함께 죽는 일. 그것이 나의 뜨거운 로망이었다. 열아홉의 나에게 두 번째 사랑이란 있을 수 없었고, 오직 지금 내 마음에 머무는 이 사람이 바로 운명의 그 사람인가만이 중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열아홉까지의 내 사랑은 모두 짝사랑이었다.
운명을 찾지 못한 채로 스무 살이 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죠? 그 시절의 나는 타임머신을 여지껏 발명하지 못한 과학자들을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정답은 오직 미래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에 가보지 못한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실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의 사랑에서도 늘 나는 반복해서 묻게 되었다. 이 사람입니까? 답을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늘 관계를 망치는 독으로 작용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수아(손예진 역)가 부러웠다. 그녀에게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에 의거하여 후회없이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다. 영화관 좌석 팔걸이에 기대어 나 역시 확신이 있다면 그 어떤 위험과 불안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확실하다면 그 무슨 일을 못하겠어?! 라고 영화관을 나서며 되뇌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우진(소지섭 역)은 뭐지? 저 남자는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어째서 아무런 고민도, 흔들림도 없는 것일까. 우진은 어째서 한 사람을 만나 처음 본 순간부터 영원히 사랑하는 일을 저렇게 쉽게 해낼 수 있었던 걸까. 어째서 그남은 “정말 이 사람입니까?”라고 묻지 않는 걸까. 왜 오직 “정말 이 사람입니다.”라고만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늘 내 사랑의 제목을 ‘정말 이 사람입니까?’로 붙여 왔지만,
수아와 우진이 나눈 사랑의 제목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어떤 사람은 두세 번의 연애 끝에 한 사람을 만나 나머지 평생을 함께 하고, 어떤 사람은 수십 번의 연애를 해도 더 오래 함께 할 반려자를 만나지 못한다. 나는 오랜 세월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 답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아직 미래에 다녀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틀렸고, 영화는 맞다.
나는 늘 내 사랑의 제목을 ‘정말 이 사람입니까?’로 붙여 왔지만, 수아와 우진이 나눈 사랑의 제목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그렇다. 사랑은 ‘결심’이었다.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는 단호한 결심.
우리는 그 누구도 인생의 답을 알고서 다음의 일을 결심하지 않는다. 먼저 결심하고 그 길에서 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는 그 노력 속에서 비로소 태어난다. 그 미래만이 오직 우리 자신의 미래다. 타임머신이 데려다준 미래는 아직 나의 미래가 아닌 타임머신의 미래일 뿐.
사랑이라고 다를까. 불확실과 불완전함 속으로, 미지와 오해의 공포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가는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단지 겁이 많았던 것이었다. 정말 이 사람입니까? 이 어리석은 제목을 이제는 지우고, 내 마음에 선명히 다시 써야 겠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 4. 9.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