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순지 <립반윙클의 신부>
우리는 모두 혼자다. 서른이 훌쩍 넘은 이후로도 여전히 싱글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더욱 더 와닿는 말이다. 혼자 아침 햇살을 만지며 잠에서 깨고, 혼자서 캄캄한 밤을 더듬다가 잠이 든다.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SNS에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쓰지만 정말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나 트위터의 ‘마음’은 마치 내게 세상이 보내주는 유일한 사랑의 신호 같아, 그 신호를 받기 위해 때로는 위악의, 때로는 위선의 가면을 쓴다. 반응이 좋으면 살아 있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맛있는 컵라면을 먹으며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기쁨이지만 말이다.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제목에 등장하는 ‘립 반 윙클’은 미국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181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서 사냥이나 하러 집을 나선 립 반 윙클은 산 속에서 고국인 네덜란드 출신의 노인을 만나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잠에서 깨어나 마을로 돌아와보니 그만 20년의 세월이 흘러버렸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비로소 완벽한 혼자가 된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한다. 조금 게으르게 잠이나 실컷 잤으면 싶지만,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 사람들의 평가를 신경 쓰고, 예의를 차리고, 책임을 다하고, 때에 맞추어 결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어떤 날은 삶의 잔소리가 한꺼번에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그런 날에는 부디 고독해지고 싶다. 립 반 윙클처럼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 도착해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어쩌면 조금씩 그 소망이 실현되고 있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SNS에서 우리는 모두 립 반 윙클이 된다. 새로운 이름을 갖고, 아무도 진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원하는 대로 나를 지어내서 살아간다. 모두가 서로를 진정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기묘한 위로를 받는다. 그 세계에서는 단 한가지만은 충분히 서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도 나도 립 반 윙클이군요 라는 이해. 나도 가짜지만 당신도 가짜라는 안도감. 우리는 모두 외로운 관심종자라는 유대감.
그렇게 21세기의 립 반 윙클이 되어 살아가던 영화 속 주인공 ‘나나미’는 연애도, 결혼도, 결혼식 준비도 모두 SNS를 통해 처리한다. 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립 반 윙클일 동안의 나나미에게는 진정한 기쁨도, 진정한 고통도 없다. 불안과 당혹스러움만이 삶에 가득하다. 이와이 순지 감독은 어째서 이 영화의 제목을 <립 반 윙클>이 아닌 <립 반 윙클의 신부>로 정했을까. 그것은 립 반 윙클이었던 나나미가 또다른 립 반 윙클의 신부가 되면서 드러난다.
소설 속 립 반 윙클은 20년 후의 세계로 가서 자신이 원하던 새 삶을 얻게 되었지만, 20년 동안 립 반 윙클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그의 아내는 어땠을까. SNS와 웹의 세계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스스로 혼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내가 곁에 있어요, 나의 말을 들어줘요.” 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립반윙클의 신부’들은 텅 빈 현실을 지키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나미의 립 반 윙클이 되었던 ‘마시로’는 나나미를 남겨두고 홀로 캄캄한 미래의 밤 속으로 떠난다. 나나미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세계로. 립 반 윙클이 떠난 세계에는 창백하고 부끄러운 현실이 남아 있다. 알몸이 되는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온갖 화려한 정보와 이미지들이 웹의 바다에 가득 떠다니는 세상에서 우리들의 초라한 삶은 너무 쉽게 비교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우리 자신이 아닌, 새로운 이름들을 만들고, 나의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것만을 앞세울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삶 같은 것은 오프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힌다. 우리들의 21세기다.
우리는 모두 혼자다. 거짓말이다. 70억의 인구가 와글와글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은 도무지 혼자일 수가 없다. 하지만 어째서 현대인들은 이다지도 외로울까. 모두가 립 반 윙클인 동시에, 립 반 윙클의 신부가 되었을까. 혼자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혼자이고 싶을까. 영화 <립 반 윙클의 신부>는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나나미는 결국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 첫 장면의 나나미와 마지막 장면의 나나미는 분명히 다르다. 마시로와의 약속대로 전망이 좋은 집으로 이사온 나나미의 눈은 아직 살아 있는 것들과 창 밖의 풍경으로 향한다. 아마도, 그 생명과 거리 어딘가에 애타게 우리를 찾으며 기다리고 있을 립반윙클의 신부가 있을 테니까. 우리는 다만 지금 혼자일 뿐이다.
2018. 7. 17. 멀고느린구름.
* 이 리뷰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HAGO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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