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비가 오면 좋겠어 (下)

단편소설

by 장명진


“아직도 거리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게 놀랍네.”


내가 무의미하게 말했다.


“지금이 몇 시지?”


친구가 물었다. 내가 항상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기에 사람들은 내게 곧잘 시간을 물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 시계는 늘 멈춰 있었다. 전지를 새로 바꾸어 줘야겠다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벌써 오육개월 전의 일이었다.


“이 시계 안 가.”

“어딜 안 가는데?”


말문이 막혔다. 아주 단순한 농담이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 있는 심의위원회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로 가지 않지.”


나는 농담으로 되받았다. 친구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갔다.


미래라는 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잖아. 근데 생각해봐. 우리가 1시간 뒤에 필연적으로 겪게 될 일이 말이야. 그걸, 아니 정확하게 말하지. 그것만을 우리의 미래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가령, 소립자의 차원에서 사고해보면 이 입자가 찰나의 시간 동안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물리학자들의 결론이잖아. 심지어는 사실 입자들은 모든 가능성의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단지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또는 감각할 수 있는 게 단방향으로만 제한되어 있단 거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 우리는 모든 가능한 수 억 개의 미래 중에 단 한 가지의 미래만 직접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야.”


친구가 언제부터 물리학의 세계에 심취해 들어갔는가 그 시점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처럼 부적 제작에 심취해 혈서로 부적을 그리는 일 같은 건 이제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전혀 쉽게 들리지 않는데?”

“좋아. 내가 반드시 이해시켜주지!”

“꼭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아니야. 이건 아주 중요한 거야.”


친구의 말을 빌려 분명히 말하자면 내가 5분 전 경험하고 싶었던 ‘단 한 가지의 미래’는 이런 것은 분명 아니었다. 눈앞에 심야식당을 흉내닌 일식 우동집이 보였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로 들어갔다. 우리는 분명 춥고 배가 고팠다. 분명 일식 우동집이었는데 맥주는 칭다오 밖에 없었다. 칭다오를 시키고 아직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벌써 취기가 오른 듯 말을 이었다.


“자전거에 앉은 채 열차의 레일 위를 달리고 있어. 그 자전거는 열차의 레일 위에서만 달려갈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왜 그렇게 설계를 했냐고 나한테 물어도 별로 소용은 없으니 그냥 잘 들어봐. 너는 그 자전거에 앉아서 페달을 열심히 밟는 거야. 넌 왜 또 굳이 페달을 밟아야 하느냐고 묻겠지. 그건 이런 거야. 자전거에 앉는 즉시 뒤에서 자전거와 유사한 속도로, 그래 시속 약 19킬로미터퍼아워라고 가정하자. 그 정도 속도로 열차가 달려오고 있는 거야. 삐익삐익 증기기관차 같은 소리를 내면서. 달리지 않으면 그 열차에 깔리게 되지. 자전거로는 최대 25킬로미터퍼아워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쓰면 금방 지쳐버리기 때문에 넌 뒤에서 오는 열차와 비슷한 속도로 근데 약 1킬로미터 정도 빠르게 패달을 밟는 쪽을 선택할 거야. 그치?"

“뭐… 아마도.”


“그치. 분명 나도 그렇게 할 것 같아. 자, 자전거 패달을 밟아가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아무리 뒤에서 기차가 쫓아와도 기차의 한계를 명백히 알고 있으니까. 적당히 여유를 부리며 주변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인생이라면 제법 살만하지. 근데 앞에서 막 운석이 날아와. 어느 별의 잔해인지는 몰라. 그냥 주먹만 한 별사탕 같은 것들이 날아오는 거야. 그걸 피하려면 정면을 봐야 해. 곁눈질을 했다가는 별사탕에게 맞아서 자전거는 멈추고 말지. 그리고 다음 결과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오직 단 한 가지의 미래만을 볼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어?”


“그러니까 니 말은… 우리가 태어난다는 건 방아쇠가 당겨진 총에서 총알이 튀어나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군. 우리는 어떤 세계 속에서 시공 속으로 튕겨져 나가는 거고,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어떤 대상에 부딪혀 총알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전에는 다른 것을 전혀 보거나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지.”


“대단한데….”


나는 칭다오를 맥주 잔에 가득 담아 모두 마셨다. 거품이 별로 나지 않았다. 친구도 따라서 마셨지만 반을 남겼다.


“너 해석이 참 좋군. 이야… 그럼 말야. 우리는 뭘 저격하기 위해 튕겨져 나오는 거지 여기에?”


친구가 남은 맥주의 반을 마저 들이키며 물었다. 나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우동이지.”

“음… 우동이로군.”


우리는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 거품이 꺼진 칭다오와 달리 우동은 썩 맛있었다. 문제는 칭다오 한 병을 다 비워버린 후에 발생했다. 친구는 아까의 날파리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날파리 이야기 말인데…. 부연하자면 말야. 그 뭐랄까 내가 냉담하게 날파리를 보고 있는 게 말야. 꼭 저기 어딘가에서 신이… 카미사마가 크크크. 날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 싶은 거야. 어 뭐야 너 죽어가고 있네. 음 어디 한 번 볼까. 뭐, 그런 말을 실제로 하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소리 같은 거로.”


그때 내 귀에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도드라져서 개구리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잠깐만, 너도 개구리 소리 들려?”


내 질문을 받고 친구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곧 눈을 빛내며 “들려.” 라고 답했다. 우리는 한 동안 말을 멈추고 선연한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었다. 나는 개구리의 위치를 찾아내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무지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맥주를 원샷한 탓인 것 같기도 해서 좀 후회했다. 친구의 표정은 어쩐지 점점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개구리의 울음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신이 지정해준 내 인생의 저격대상 같은 것은 무시해버려도 좋은 것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신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도 증명할 수 없고. 하지만 개구리는 분명히 있으니까. 우동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뒤로도 우리는 한 동안 멍하니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점점 좁은 우동 가게에 가득 들어 찬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개구리처럼 보였다. 십여 명 남짓의 개구리들이 우동을 먹고, 칭다오를 마시며, 개골개골 인생의 따분함을 노래하고 있었다.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오는 거지?”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비가 오면 좋겠어.”


친구가 말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 개구리 일식 우동집을 나와서 다시 거리를 걸었다. 내 귓가에는 아직도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친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친구 역시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정말로는 모르는 채로 조명을 끄고 있는 까페들 사이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무지막지하게 부잣집들이잖아. 크크큭.”


언덕길 주변의 집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친구의 표현에서 세련미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탓이다. 평소에 상당히 세련된 척을 하고 사는 친구는 사실 위험할 정도로 천진난만한 인간이었다. 하필이면 그 천진난만 본능은 이성의 기능이 약화되었을 때만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어느새 내게 어깨동무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떼어내고 싶었지만 나 역시 피곤했기에 그대로 두었다.


“무지막지하다는 표현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들어 맞는구나.”

“으음… 좋아. 라임이 좋아. 하하하.”


라임보다는 친구의 기분이 훨씬 좋아보였다. 친구는 우동 집에 정신줄을 놓고 온 것이 분명했다. 의도적인 분실이 분명했다. 친구와는 반대로 내 이성은 점점 분명해졌다. 내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술은 기묘하게 내 몸에서는 카페인의 역할을 했다. 반대로 커피는 이상하게도 알코올의 역할을 했다.


“야, 저기 자판기 있다. 너도 커피를 좀 마셔라. 같이 취하게.”


기억하고 있었군. 친구는 흔들거리며 자판기로 앞으로 가서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마술사처럼 동전을 소환해내어 나를 향해 굳이 흔들었다. 동전을 먹은 자판기는 정직하게 믹스 커피를 선사했다. 친구가 기뻐하며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게 건넸다. 흔들리는 캄캄한 액체 속에 가로등 불빛과 내 얼굴이 있었다. 종이컵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이 가로등 불빛인지, 내 얼굴인지, 커피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취기가 돌았다.


“저 정도 집을 얻으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지?”


사실, 친구의 직장은 무슨 연구소 같은 게 아니라 은행이었다.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직장에 그가 계속 머물고 있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아무래도 나 같은 문과 직종보다는 사회적 셈에 능할 것 같아서 던져 본 질문이었다.


“음… 글쎄. 한 50억? 그 정도인 것 같은데.”

“50억이란 액수를 사람의 입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된 거구나.”

“전두환과 노태우가 활짝 연 시대지.”

“그러고보니 그렇군. 근데 50억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걸 벌려고 하면 평생 못 벌어. 그냥 가지려고 해야지.”

“가진다고?”

“가지는 거지. 아마 넌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 세상엔 50억 정도는 그냥 가질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 가령 이런 거지. 100억짜리 빌라를 하나 샀는데, 여름이 지나고 나니 빌라 옆에 호수 공원이 생긴 거야. 덕분에 빌라 싯가가 150억이 됐어. 그러면 50억을 가지는 거지.”

“그런 거구나…. 아니, 그런 것보다 좀 더 정상적인 방법은 없어?”

“그게 정상적인 거야.”


친구의 말이 끝나고 난 뒤 다시 주변의 집들을 둘러보니 어쩐지 쓸쓸해졌다. 그 안에 호수 공원 덕분에 50억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당연히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분명 호수 공원에서 매일 아침 착실하게 조깅을 하며 건강을 지키고, 매일매일 착실하게 파워포인트 문서를 작성해서 50억을 번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보통의 중소기업 회사원이 받을 수 있는 연봉 2500만 원을 사용하지 않고, 200년 동안 모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우리는 어느 사이에 언덕 꼭대기에 올라와 있었다. 법원에 가서 결판을 내야한다면 확실히 우리 스스로 온 것이지만 꼭 우리가 ‘선택’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누가 우리를 이 높은 곳에 데려다 놓았을까. 비슷한 이름의 노래 제목이 떠올랐다. 오지은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였다. 예전에 내가 그녀의 1집 인디 앨범을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준 일이 있었다.


“오지은 신곡 들어봤어?”


허리의 유연성을 길러준다는 운동기구에서 허리를 돌리고 있는 친구에게 넌지시 물었다.


“오지은?”

“아니다.”


나는 왠지 기분이 나빠져 말을 끊었다. 굳이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는데 기분이 나빠지면 정말 기분이 나빴다. 상대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불쾌감까지 더해져서 마이너스 파동이 증가하고 마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세상의 사람들이 점점 스트레스가 늘어가고 있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분명히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받고 있는데, 아무도 그 누군가라고 스스로를 자임하지 않는다. 모두가 이유 없이, 가해자도 없이 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실패하고, 당하고, 깨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상대를 그렇게 만들려고 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말도 안 되고 기분 나쁜 세상이다. 그래서 내 기분은 더욱 더러워져버리고 있었다.


“비가 오긴 오려나?”


친구가 운동기구에서 내려서며 한껏 기지개를 켠 뒤 물었다. 나에게 하는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목격자가 있다면 분명히 친구의 앞에 펼쳐진 새벽의 도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고 증언해야 위증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나도 친구의 시선을 따라 새벽의 도시를 바라봤다. 새벽 세 시경이었다. 지금 불이 켜진 집들은 어느 쪽에 해당할까. 아직 잠이 들지 못한 것일까, 벌써 깨어난 것일까. 먹구름 사이로 달이 드러났다. 곧 스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하현의 달이었다. 누군가 손톱깎기로 잘라낸 손톱 조각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문득 내 손톱을 내려다 봤다. 많이 자랐다. 잘라야 할 때가 됐다. 손톱이 길면 자른다. 다시 손톱이 자란다. 다시 자른다. 다시 자란다. 그렇게 두고 보니 달과 손톱은 닮았다. 손바닥을 펴서 달 옆에 놓았다. 내 손바닥이 달 보다 컸다.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스러질듯 가녀린 하현의 달을 가운데에 두고 왼편에는 내 손바닥, 오른편에는 친구의 손바닥이 놓였다. 이번에도 목격자가 있다면 그들은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원기옥의 기를 모으는 것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증언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친구도 따라 웃었다. 우주 어딘가에 홀로 떠있을 하현의 달이, 개지 않는 먹구름이, 차가운 새벽의 공기가, 잠들지 못했거나 너무 일찍 깨어난 도시가 우리를 간지럽혔다.


“그래! 간지럽다는 표현이 딱이야!”


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쳤다. 친구는 분명 나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냥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버스정류장에 멈췄다가 지나가는 버스처럼 평범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집을 나설 때 내가 상상한 몇 시간 뒤의 미래는 이런 것이 결코 아니었다. 우주란 건 참 신비하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가 나를 대신해 말해주었다.


“비가 오면 좋겠군.”


- End -


2016. 5. 3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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