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우주의 의미 1

소설 <우주의 의미>

by 장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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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마지막 이별을 알리는 당신의 편지를 확인했던 여름의 밤부터 - 그날 서울의 온도는 38도였고, 많은 사람들이 한강변으로 쏟아져나와 더운 마음과 몸을 식혔다고 하죠 - 였을까요. 아니면, 자괴감에 휩싸인 제가 당신을 향해 온갖 책망의 말들을 퍼붓고 돌아서버렸던 겨울의 저녁, 세상이 모두 검푸르게 멍든 것처럼 보였던 그 날부터였을까요.


어릴 때에도 저는 종종 우주의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갔는데 평소와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졌어요. 집 안의 모든 공기가 죽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또렷하던 사물들의 경계가 흐려지고, 색이 옅어지고, 혼은 중력을 벗어난 듯 가벼워졌지요. 그곳에는 아무도 없고, 앞으로도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는 명백한 예감만이 떠돌았어요. 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구나, 오직 나뿐이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나의 혼은 죽은 공기 사이를 부유했고, 껍데기만 남은 채로 저는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던 겁니다. 혼마저 새어나가버린 저, 그때의 저는 대체 무슨 의미로 세상에 존재해야 했을까요. 저의 존재 의미가 없는 세상은, 우주는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제가 이 우주에 없더라도, 당신은 살아가겠지요. 당신도 어느날 이 우주를 떠난다면, 당신에게 당신일 사람들은, 관계로 엮어진 무수한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의 무언가가 하나쯤 없더라도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그건 그들의 우주이지, 당신의 우주도, 저의 우주도 아닙니다.


저는 어린 시절의 그 어느날 분명, 저의 우주가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해요. 우주의 역사서에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겠지만, 제 우주는 한 번 멸망했습니다. 그날 영원하고 캄캄한 고독의 예감 속에서 저는 홀로 콩나물국을 끓였고, 시장에서 사온 두부를 반듯하게 썰어서 옅은 금빛을 띠기 시작한 국물 속에 넣었고, 완성된 국을 차갑게 식은 밥과 함께 먹었어요. 저녁이 지나고, 밤이 왔고, 라디오를 켰고, 이름을 잊은 미국인의 피아노 연주가 우주의 죽음을 위로했고, 저는 자정의 종말 속에서 우주의 의미를 고민했습니다. 아무래도 우주 같은 것은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그날 밤 저는 제 우주를 소멸시키는 스위치를 눌러버렸던 겁니다. 그리하여 새어나간 나의 혼은 돌아올 길을 잃었고, 아침이 되자 제 껍데기 속에는 새로운 혼이 들어앉아 멍하니 두 번째의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 몸은 기억합니다. 지금 제 속에 머무는 이 혼이 두 번째인 것을요.


우주란 것은 단지 우리 안의 혼들이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을 해석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빛나고, 어두워지고, 흔들리고, 멈추고, 떠나고, 만나며, 속삭이고, 열을 교환하지만 그 모든 살아있다는 느낌, 살아가도 좋다는 의미는 해석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주는 카메라 렌즈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렌즈 그 자체입니다. 아무것도 정말로 있지 않습니다. 시간도, 공간도, 사랑도, 나와 당신도, 단지 신념일 뿐입니다. 우리들은 우주라는 종교의 신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과하다, 뿐이다, 지나지 않다’ 라는 표현은 썩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우주는 우리에게 때로 충분한 보상을 줍니다. 길게 늘어선 롤러코스터 탑승대기줄에 서서 당신의 손을 붙잡고, 쏟아지는 10월의 저녁 햇살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햇살은 전당포에서 거래가 가능할 정도로 황금빛이었습니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 잠겨 있는 듯, 황홀한 빛이어서 우리는 서로 입을 맞췄습니다. 저는 당신의 우주를, 당신은 저의 우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순간이었겠지요. 그런 날에는 우리가 같은 우주에 살아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우주가 있어주어서, 우주 속에 당신과 내가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우주를 낳은,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신비를 향해 경의를 표하게 만듭니다. 우주라는 종교는 그렇게 우리들을 독실한 신자로 만드는 것이지요.


황홀한 환상은 우주 자체가 환상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우주라는 환상은 사실 너무나 사소하여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주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을 때만 우주는 존재합니다. 당신과의 이별이 제게서 의미를 앗아갔으니, 우주는 지금 제 앞에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있지도 않은 우주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2019. 10. 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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