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우주의 의미 3

소설 <우주의 의미>

by 장명진

3


비탈의 끝에 내려가 발견한 것은 칠흑처럼 까만 새끼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2인분 호빵만한 크기였다. 작은 내 두 손바닥 안에도 쏙 들어왔다. 작고 마른 풀들이 털 사이에 끼여 지저분해보이기는 했어도, 까만털에선 윤기가 흘렀다. 아이는 힘이 없어 짖지도 못하고 나를 올려다보며 낑낑 거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간신히 내고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어쩌면 여자아이가 담벼락 뒤로 날아간 날부터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얼 먹이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첫날부터 2주째까지는 누룽밥을 물에 말아와 먹였다. 아이가 비탈의 잡초 속을 걸어다닐 수 있게 된 무렵부터는 학교 아이들이 먹다 남긴 동그랑땡이나 소시지 같은 것을 모아와 먹였다.


담벼락 뒤의 세계는 사방이 막힌 공간이어서 담벼락을 넘지 않으면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비탈의 끝은 곧 10층짜리 아파트의 뒷면과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뒷면으로 난 조그만 창은 아마도 욕실의 창들이어서 아무도 굳이 비탈 쪽을 내려다 보지 않았다. 그곳에는 늘 나와 검은 강아지와 무성한 잡초, 그리고 이름 모를 벌레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이상하게 더 싱싱했다. 밤이 내린 뒤에는 어김 없이 별들이 켜졌는데, 어디에서 보는 것보다 더 총총했다. 나는 밤을 닮은 검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 그 유난한 별들을 올려다보고는 했다. 그러면 강아지도 따라서 캄캄한 우주 속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마치 자기가 떠나온 고향이라도 되는 듯이. 나는 아이에게 ‘우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주를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집에는 동네 개가 짖을 때마다 욕설을 퍼붓는 사내가 살고 있었고, 그는 언제나 취해 있었으며, 이따금 물건을 집어던지는 취미가 있었다. 한 번은 단단한 유리 재떨이에 맞아서 며칠이나 학교를 갈 수 없었다. 그 재떨이에 맞아본 사람 중에 집에 남아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그곳에서 데려가지 않았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우주를 품에 안고 있을 때면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나도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처음 알았다. 영원히 담벼락 뒤의 닫힌 세계 속에 머물고 싶었다. 담벼락 위로 펼쳐진 허공에 자물쇠를 채워 걸어잠그고 싶었다. 우주와 함께 그대로 서서히 굶어 죽고 싶었다. 우리의 시체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으면 싶었다. 20세기가 저물고 있었다. 그대로,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예정된 바와 같이 세상이 멸망하기를 기원했다. 헛소문, 비방, 차별, 가난, 따돌림, 멸시, 방관, 혐오, 폭력, 이러한 말들과 함께. 칠흑같은 밤이 공평하게 모두의 마음에 내리기를 원했다. 우주와 나를 버린 모두에게 엄벌이 내리기를 원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벌을 받는다고 했다. 내가 나쁘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나쁘지 않았다. 악당은 나였다. 엄벌은 나에게만 내려왔다. 늦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세기말의 겨울이 성큼성큼 걸어왔을 무렵, 우주가 사라졌다. 우주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담벼락 뒤에는 오직 나와 우주뿐이었으니까. 벌레나 잡초의 말을 해석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주가 사라지고 몇 주 뒤에 눈이 내렸다. 눈이 잘 오지 않는 고장이었다. 라디오 디제이는 10년 만의 함박눈이라고 말하며, 비틀즈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틀었다. 나는 우주가 먼 고향으로 돌아갔으리라 여겼다. 우주도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21세기가 곧 찾아왔다. 사람들이 내가 달라졌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2019. 10. 1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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