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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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별이 된다는 걸 믿어요? 기억나요? 우리 같이 자주 읽던 그림책 있었잖아요. 네덜란드의 어떤 작가가 쓴 거였고, 페이지마다 다양한 색깔의 우주가 그려져 있던 책이요. 난 핑크빛으로 된 우주를 좋아했고, 선배는 검푸른 색으로 된 우주를 좋아했잖아요. 핑크빛 페이지에는 북두칠성이 있었고, 검푸른 페이지에는 은하수가 있었죠. 난 가끔 그때 선배가 좋아했던 검푸른 페이지를 꿈에서 봐요. 그때마다 그렇게 많은 별들이 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라면 너무 무섭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들은 저 막막한 곳에서 뭘할까, 그냥 반짝이는 것밖에 못하는 거라면 굳이 죽어서 별이 될 것까지 있나... 우주는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는 않잖아요. 저는 그냥 죽어서 가는 곳이 푹신한 침대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마음 편히 누워서 두툼한 겨울 이불을 덮고, 귤이나 하루 종일 까먹으며 티비를 볼 수 있는 데, 그런 데면 좋겠어요.
수연은 밤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고 무릎을 몸 쪽으로 당겨 얼굴을 푹 묻었다. 방에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자, 수연은 베시시 웃었다. 내가 말할 차례였다.
무슨 책에서 봤는데 말야. 사람이 죽으면 빛의 구슬 같은 것으로 변해서 영혼들의 세계로 날아간대. 그곳에서 빛의 구슬들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어. 멋진 집을 원하면 멋진 집을, 귀여운 고양이를 원하면 귀여운 고양이를, 맛있는 떡볶이를 원하면 맛있는 떡볶이를 그냥 생각만하면 얻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푹신한 침대나 겨울 이불, 귤 같은 것도 한 박스 쯤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거지. 그 책을 읽은 뒤부터 난 밤하늘의 별이 반짝일 때 그런 생각을 해. 아, 영혼들의 세계에 있는 누군가가 상상의 힘을 쓰는구나. 반짝하고 침대를 만들고 있구나, 반짝하고 아이스라떼를 소환하는구나 하고. 그렇게 보면 우리가 예전에 봤던 그림책 이야기랑 니 소원이 서로 다르지 않은 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슬프고 무서운 게 좀 덜하지 않나?
덜해요. 확실히 덜해요. 그 말대로였으면 좋겠어요. 저 막막한 어둠 속에서 별이 반짝이는 게 그렇게 생각만해도 행복한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선배가 잃어버린 아기 강아지도 언젠가 저기에 가게 되면 반짝하고 선배를 소환해서 품에 쏙 안겨 있을 수 있겠죠?
벌써 가 있는지도 몰라. 가끔 나는 꿈에서 걔를, 우주를 품에 안고 있거든. 신기하게도 그 쪼그만 온기가 꿈인데도 느껴져. 슬프지 않고 행복해. 아기 강아지 만큼의 아주 작은 행복이지만. 나는 이따금 그 꿈 때문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해. 저 밤 속의 세계와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대. 그래서 우리가 눈을 감고 캄캄한 밤을 받아들이면 우리도 모르게 저 세계 속으로, 우주 속으로 합류하는 거야.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그 책을 쓴 사람은 얘기했어. 근데 하나도 믿을 수 없는 얘기야 실은.
내 생각엔 우주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아요. 인간만 우주를 사랑하죠. 평소엔 별로라던 사람들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면 아- 하고 심쿵하게 될 거잖아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참 우주를 사랑하는데, 우주는 안 그래요. 무관심하거나 마음에 드는 몇 사람만 편애해요. 난 그런 게 너무 맘에 안 들어요. 그래서 내 쪽에서도 그다지 좋아해주고 싶지 않아요. 본능을 거스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밤이 오면, 문득문득 하늘을 뒤져서 별을 찾아보게 돼요. 아, 저깄다 라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요. 아마, 그런 걸 ‘희망’이라고 하는 거겠죠? 맘에 안 들어요 희망이란 것도.
수연은 희망을 마음에 안 들어하며 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수연의 마지막 미소다. 수연은 그날로부터 5년 뒤, 스스로 별이 되었다. 우주 여행시대가 열렸다는 기사가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올라온 날이었다. 수연이 지상에서 견뎌낸 5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수연이 날아간 곳이 핑크빛의 우주 어딘가이기를 바랐다. 가끔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볼 때면 수연이 활짝 웃으며 귤을 까먹는 모습을 상상한다.
2019. 10. 26.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