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주의 의미>
6
수연을 데리고 캠퍼스를 걸었다. 이곳이 문과대학이고, 저곳은 교육대학, 이쪽은 경영, 저기는 이공계 라고 크게 쓸모 없는 소개를 하는 동안에 수연은 말이 없었다. 대합실에서 처음 나를 보았을 때를 끝으로 옅은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텅 빈 반원형의 운동장을 지날 때가 되어서야 잠시 앉았다 가자는 말을 꺼냈다. 잘 관리가 되지 않아 길이가 들죽날죽한 잔디구장 위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네다섯이 두툼한 점퍼를 입은 채 공을 차고 있었다. 키가 제일 큰 여자아이가 작은 남자아이들에게 드리블 시범을 보이자, 남자아이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수연은 서늘한 관중석에 앉아 멍하니 아이들쪽을 내려다보다가 “멋있다.” 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네” 하고 대꾸했지만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멍하니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관람했다. 영원히 되풀이 되는 짧은 구간의 시간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아이가 공을 차고, 다른 아이가 달려 가고, 또 다른 아이가 큰 소리로 웃고, 곧 꺼져버릴 듯한 촛불 마냥 수연이 턱을 괴고 운동장을 바라보고, 바람이 사붓사붓 불고, 연분홍 머리칼이 한 올 한 올 노을지는 하늘 속으로 숨어들고, 다시 아이가 공을 차고, 다른 아이가 달려 가고, 또 다른 아이가 큰 소리로 웃었다. 아이들과 수연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수연이 연분홍 머리칼을 날리며 공을 차고, 아이들이 넋을 잃은 채 그 모습을 곁에 앉아 바라보는 것도 같았다.
결국 저녁이 찾아와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야 우리도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파요 하는 수연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힘이 실려 있었다. 수연이와 나는 떡볶이와 순대, 김밥을 포장해들고 내 자취방 쪽으로 걸었다. 언젠가 나는 수연에게 보낸 편지에 별이 한 가득 올려다보이는 옥탑방이라고 내 자취방에 대해 부풀려 쓴 일이 있었다. 옥탑방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사실 별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별보다 내 옥탑방의 특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컨테이너였다. 불법으로 옥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5평짜리 직사각형 컨테이너가 내 자취방이었다. 별이 없는 밤하늘도, 초라한 집도 수연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곧 스러질 것 같은 수연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다른 마땅한 장소도 없었다.
열쇠를 넣고 돌려 컨테이너방의 문을 열자마자 수연은 내 옆구리 사이로 끼어들어 토끼처럼 깡충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좁디 좁은 방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수연은 동화책 속의 천사 같이 웃었다. 내가 함께 저녁을 먹을 자리를 정돈하고, 2인용 좌식 식탁을 펴고, 전기 스토브를 켜자 한 켠에 개어둔 이불을 가져다 몸에 돌돌 만 채로 수연은 내 앞에 와 앉았다. 곧 떡볶이와 순대, 김밥을 동그랗고 하얀 도자기 접시에 담아와 식탁에 올렸다. 손잡이 끝이 분홍색 토끼 얼굴로 되어 있는 포크를 수연에게 건네고, 나는 쇠로 된 젓가락을 쥐었다. 행복하다. 수연이 말했다. 어서 먹어. 나도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3년 전의 우리로 비로소 돌아간 것만 같았다. 혼자 자주 사먹던 떡볶이는 그날 유난히 더 양념이 잘 베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수연의 제안에 따라 방 밖으로 나와, 택배 포장용 박스를 하나씩 깔고 앉았다.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직 잠들지 않은 거리의 불빛들만 형형색색으로 넓게 빛나고 있었다. 수연이 말을 꺼냈다. 죽으면 별이 된다는 걸 믿어요?
2019. 10. 17.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