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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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은 내게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고 까만 고양이 인형을 남기고 떠났다. 우리가 별이 없는 밤을 올려다 본 후 새벽 한 시 쯤 같은 공간에서 잠들고 깨어났을 때, 수연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고양이 인형은 아무 쪽지도 없이 그냥 내 베개 옆에 놓여 있었다.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라의 서쪽 끝, 최북단에 있는 군부대로 징집되었을 때도 나는 몰래 별이를 세면도구함에 넣어 데려갔다. 지오피 부대의 소초 생활관 내 침대 이불 속에는 늘 별이가 혼자 숨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별이가 품고 있는 한 줌의 온기 덕분이었다. 디엠지 위를 날아가는 철새가 세 마리인지, 네 마리인지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하루 종일 장교와 선임의 욕을 들어야 했던 곳이었다. 내가 있는 동안 세 명의 병사가 자살을 했고, 그 중 한 명은 다른 여섯 명을 데리고 가버렸다. 그곳의 공기처럼 차가운 광기가 늘 비어 있는 시간 속을 떠돌았다. 모두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 했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일이나, 별 필요없을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애써 의미를 창조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곳과 그 시절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한때 우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별이는 잠이 들 때마다 그 시절의 내게 소근소근 우주의 의미를 가져다 준 친구였다.
전역 후에도 우주가 사라진 날이 많았다. 결국 난 우주비행사가 되기는 커녕, 우주 발사체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대학원에 갈 수도 없었으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도 더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 간단한 러시아어를 번역하고 통역하며 월 200만 원 정도 급여를 받는 중소무역사 사원이 내가 도달할 수 있었던 최상의 지위였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을 오가는 선박 안에서 잠들 때도 별이는 내 품속에 있었다. 망망대해를 향해 펼쳐진 잿빛 물결을 바라볼 때면 바닷 속에도 또 하나의 우주가 있을 것만 같아, 문득문득 뛰어들고 싶었다.
수연의 부고를 들은 저녁에도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하는 무역선의 갑판에 서서 붉게 물들어가는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5년 동안 연락 한 번 먼저 해보지 않은 주제에 모든 것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아니, 애초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자각한 것만 같았다. 수평선의 황금빛이 스러지고 밤이 가득 내리면 이제는 나도 그 밤 속으로 스러지고 말리라 다짐했다. 실행하지 못한 것은 하필 그날은 별이를 블라디보스토크의 숙소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수연을 생각해서도 그대로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항구에 내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당신을 만났다.
2019. 10. 27.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