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들

우주의 의미 12

소설 <우주의 의미>

by 장명진

12



당신은 처음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먼저 태어난 쪽은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서른이었고, 저는 스물일곱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고, 나는 당신에게 존댓말을, 당신은 나에게 이따금 반말을 썼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반말을 쓸 때가 좋았습니다. 우리의 보금자리는 이화동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이면 서울의 지붕과 옥상들이 빨갛게 물드는 풍경을 바라보며 성곽길을 산책했습니다. 돌아올 때 즈음이면 창창한 밤이 쌓이고, 크리스마스 나무처럼 색색의 전구들이 서울의 머리 위를 밝혔습니다.



당신은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입사했습니다. 갤럽처럼 사회의 여러 여론을 조사하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몇 해 전에 갤럽에 원서를 넣었다가 떨어진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새 회사를 갤럽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쉬이 무너지는 사람은 7년을 견딜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 걸음도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걸음을 나서지 않았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한다던 공모에도 지원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 미리 그만두었던 나는 스스로 우주의 별들을 꺼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비록 별들이 아스라이 멀더라도 끝내 꺼버리지는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팔을 뻗어본 사람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7년 뒤의 세상으로 돌아가 당신 곁에서, 당신의 영혼이 하루하루 단단하고 선명해지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랬다면 나도 당신처럼 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침에 키스를 나누고, 당신이 회사로 떠나고 나면, 나는 홀로 빈 방에 앉아 이메일로 들어온 번역 의뢰들을 확인하고, 러시아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러시아어로 옮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종종 시계를 보았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당신이 돌아올 숫자 위에 시침이 가있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시장에 나가 저녁 찬거리를 사고,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커피 원두를 채워넣고, 당신이 오면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 그 어떤 영화의 장면들보다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티비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책을 읽을 때까지도 서로의 한 손을 상대에게 맡겼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을 때 겨울은 겨울의 색을, 봄은 봄의 색을 사람 앞에 드러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던 길도, 눈이 내리지 않던 길도 예뻤습니다. 봄이 오면 그토록 많은 꽃들이, 여린 잎들이 지상을 가득 채운다는 것을 당신이 곁에 있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겠지요. 표류하던 망망대해 위에서 보물섬을 발견한 것과 같은 두 계절이었습니다. 영원히 그곳에 갇힌 채 어디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당신과 함께 우주의 끝을 맞이하길 기원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 우주따위의 사랑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2019. 11. 1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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