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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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은하수라니... 그런 건 처음 봤어요. 그런 말 아세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요. 은하수를 바라보는데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구요. 외할머니가 절 참 예뻐하셨는데,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치매로 오래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어느 설엔가 찾아갔을 때, 저랑 할머니랑 단 둘이 있었는데 아주 잠깐 정신이 돌아오셔서 했던 말이 아직 기억나요. “곱다 고와...” 라며 주문을 걸듯이 제 머리를 오래 쓰다듬으시더니... “잊지마라. 너는 귀한 아이란다.” 하고는 부모님이 하얀 병실문을 밀고 들어오실 때까지 한참 동안 절 들여다보셨어요. 꼭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말예요. 창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거든요. 병실이 정말 아주 하얀 병실이었고, 이제 막 정오가 되려던 참이라 빛이 가득했어요. 회전하는 빨간 스토브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따깍따깍 소리를 냈구요. 아무 것도 틀어놓지 않은 조용한 병실이었는데, 어떤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제가 사실은 그 병실에 할머니 곁에 앉아 있는 것만 같네요. 이상하죠. 진짜 이상하다. 은하수 때문인가봐요. 그걸 봐서 그런 것 같아요. 말도 안 되지만 말예요.
어느덧 방 안에는 창을 통해 스며든 연푸른 색의 별빛들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돌아누운 당신의 작은 등과 긴 머리카락이 별의 그림자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습니다. 당신은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우주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던 수연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날 사랑해주면 좋겠어. 수연이 말하지 않았던 말이 그제서야 또렷이 들렸습니다. 저는 작은 고양이 인형 별이를 가만히 당신 앞에 내려놓고,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가만히 별이를 끌어당겨 안았습니다. 오랜 시간 당신은 소리도 없이 울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세 시 즈음이었습니다.
“은하수... 더 보러 가실래요?”
당신은 갑작스런 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당신의 눈과 제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상한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도, 두툼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선형 계단을 다시 내려와 차디 찬 러시아의 밤거리 속으로 나섰습니다. 택시를 불러 사람들이 모두 떠난 해변에 당신과 나는 내렸습니다.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무인의 바다 위에는 무수한 별들만이 가득했습니다. 별과 별과 별들이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는 밤하늘을 우리는 모래톱 위에 담요를 덮고 앉아 올려다보았습니다.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신과 나는 그날 싸늘히 식어가는 몸을 내버려뒀습니다. 꼭, 동반 임사체험에 나선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날 어쩌면 제 두 번째 우주가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분명 당신의 우주도 그날 함께 사라졌을 테지요. 우리는 새로운 우주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테지요. 그래서 그토록 모든 것이 뜨겁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당신과 내가 아르바트 거리를 걸으며 맞았던 눈송이도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있었고, 당신의 피가 만든 온도와 내 피가 만든 온도가 서로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무수한 별들을, 가능성의 우주를 새로이 창조했습니다. 우주가 사랑하지 않은 우리를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뒤, 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당신이 있는 서울로 왔습니다. 빛이 제법 잘 비쳐드는 반지하 방을 구했습니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두 개의 방이 마주 보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왼쪽을 당신은 오른쪽 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제 우리의 우주가 특별히 달라지리라 확신했습니다. 멜로 영화의 해피엔딩과 같았던 시간은 다음 해 여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2019. 11. 10.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