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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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처음 은하수를 봤어요. 아까 선생님이 트렁크 문을 닫으며 쾅 소리가 날 때 갑자기 정신이 들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하늘을 한참 쳐다보셨잖아요. 자연스레 저도 밤하늘 쪽으로 눈길이 갔는데... 와... 정말 어떻게 밤이 그래요? 여기의 밤은 원래 다 그런가요? 꼭 우주 공간 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갑자기 지나온 날들이 여기저기서, 그래요 마치 인터넷 광고창들처럼 우르르 떠오르는 거예요... 문득 살고 싶어졌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만 반복했었는데요. 오늘은, 아... 이제 어제가 되었겠죠? 어제는 정말 작별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정말 오랜만에, 말할 수 없이 오랜만에, 살고 싶다... 라고 말했어요. 제 입으로, 아주 작아서 선생님은 못 들으셨겠지만요.
괜찮으시면 제 얘기를 좀 해도 될까요? 저는 이제 막 서른이 됐어요. 나쁘지 않은 대학교를 졸업했어요. 무려 8년 전에요. 성적도 괜찮았거든요. 스물두 살 그 무렵에 저는 이제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점점 멋있는 어른이 되어 가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요. 좋은 기업에선 아무도 저를 뽑아주지 않더라고요. 나쁘지 않은 형편의 집에서 태어나서, 부족할 것이 없이 자랐다고 말해지는 아이들 있죠? 그 애들 대부분이 정신병에 걸려 있어요. 엄마는 늘 저한테 더, 이제 조금만 더, 앞으로는 더, 뒤쳐졌으니 더 라며 더, 더, 더 성적이 좋은 자식이 되라고 독촉했어요. 저한테 성적이라는 빚을 맡겨 놓은 사람처럼요. 아빠는 아무 관심이 없었어요. 사람 좋은 아빠라는 자기 롤모델을 만들어 놓고, 적당히 역할 수행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유형들 아세요? 엄마가 그런 채권추심인 같은 인간이 된 거, 절반 이상 아빠 탓이에요. 부부라고 하지만 자식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하는 일도 없고, 가정의 대소사는 으레 아내가 알아서 처리하는 거잖아 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이었죠 아빠는. 엄마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었는데요.
제가 사회학과를 다녔어요. 전공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견뎌온 세계의 그 무심함이, 방향성 없는 빈곤한 애정이 눈에 뜨이더라고요. 잘 살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해. 좋은 대학을 나오려면 고등학교 성적이 좋아야지. 고등학교 성적이 좋으려면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시켜야 해. 라고 하는 프로세스가 망령처럼 지배하는 세계가 바로 청소년기 아닌가요. 그 속에서 전 시키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못했어요. 한번은요. 아주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는데요, 주말에 학원을 빠지고 병문안을 가겠다고 했더니 그래요, 죽을 병이니? 어차피 퇴원하면 볼 거 아니니? 전 학원에 갔어요. 한 주 뒤에 친구가 퇴원을 했지만, 다시는 제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부모는 제가 가야할 대학을 자기들끼리 정해놓고 있었고, 저는 바로 그 학교 학생이 되기 위해 면접관 앞에서 우는 연기도 했어요.
세상은 되게 단단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빈틈이 가득해요. 모두가 원하던 그 학교 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거닐고,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데... 저는 자꾸 그때 면접관 앞에서 울었던 일이, 너무 치욕스럽게 여겨지는 거예요. 혹시... 혹시 그 가짜 눈물이 나를 여기 있게 만든 건 아닐까... 수백 번을 생각했어요. 취업을 위해 면접관들 앞에 서면 연기자가, 다시 그때의 내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한번 더 그런 일을 저지르면 내 인생이 다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묻는 질문에 솔직한 말만 했더니 불쾌해들 하더군요. 당연하죠.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7년이었어요. 7년 내내 어디든 떨어지기만 했어요. 물론, 더 월급이 적고, 내가 가진 능력과 맞지 않는, 마음에 안 드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7년을 떨어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못해요. 만약 저기서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 공포가 우릴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에요. 저길 안 간 건 내 선택인 거야 라는 확신조차 무너지면 끝인 거죠. 이상한 세계죠. 내가 나인 걸 증명하는 방법이 오로지 합격뿐인 세계. 난 계속 어딘가에 합격하려고만 발버둥치며 살았어요. 바보 같아요 정말. 사실 합격 이후를 여러번 살아본 거잖아요.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세상이 광고하는 낭만적인 세계는 하나도 없었는데... 바보 같이 계속 합격하면 그 다음에는... 이라고 좀비처럼 중얼거리며 인생을 뒤로 미루고 29년을 살았더니... 어느날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요.
자기계발서나 세계일주 여행서 저자들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면 나를 발견하게 될까 싶어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공항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죠.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어요. 주머니에 남은 돈이 몇 푼 있더군요. 어딘지도 모른 채 택시비를 내고 무작정 내렸어요. 이젠 정말 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그래도 그런 곳에서 차에 치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건 너무 개죽음이잖아요. 죽을 장소 정도는 스스로 선택해야지 덜 억울하죠. 바다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고 나를 죽음의 바다로 데려다줄 저승사자를 기다렸어요. 손을 들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의 차가 멈췄을 때는 확신했죠. 오늘이 정말 끝이구나. 오늘, 그러니까 선생님과 만난 어제가 제 생일이었거든요. 바다는 차갑겠지만 죽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와... 은하수를 본 거예요.
2019. 11. 3.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