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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Sep 27. 2022

푸른 새벽의 잉어들

어느 하루의 이야기


푸른 새벽에 눈을 뜨면 언어가 작은 잉어들처럼 모여들었다. 내 마음에 고인 물가에 모여드는 잉어들을 느끼며 한 잔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곧이어 글을 쓰는 것은 서른 살 무렵부터의 내 리추얼이었다.


시작은 방편이었다. 철원에서의  장교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8-9시에 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정을 넘기는 날도 허다했다. 소설을 쓰는 일에 너무나 목말라 있던 나는 10시에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6 반까지 글을 쓰기로 했다. 2년을 지켜내니 습관을 넘어 본능이 되었다. 그렇게 리추얼이  나의 새벽 집필 본능은 시간대가 조금씩 바뀌긴 했어도 이후 10 동안  작품의 엔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10년의 리추얼은 흩어져버렸다. 실연으로 엔진이 잠시 멈춘 것에 이어 글을 써야 하는 직장으로 이직하며 가장 좋은 시간대에 업무를 해야 했다. 새벽이면 여전히 잉어들이 모여들긴 했지만 내가 다정히 보아오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퇴직하고 두 달여가 지나가고 있다. ‘소설가의 몸’을 되찾고 싶었으나 아직 이루지 못했다. 대신 ‘한낮의 강아지’ 같은 몸이 되어가는 듯하다. 다락방 소파에 종일 등을 기댄 채, 햇빛이 환해지고,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는 것만을  선명히 감각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줄에 묶인 채, 현관문 앞에 누워 가끔 하품이나 하며 하루를 보낼 뿐인 강아지의 삶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유년 시절의 일이다. 이 생명체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모습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목줄을 한 채로 이따금 하품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넘어서는 5-6차원의 존재가 있어 나를 관람하는 중이라면 쟤는 왜 사나 싶을 것이다. 누군가 힘껏 내던진 팽이처럼 우리 모두 왜 돌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씽씽 돌다가, 서서히 회전력을 잃어갈 뿐이다.


다만, 오늘 아침에는 반가운 잉어들이 이렇게 찾아와줘서 한 편의 에세이를 쓴다. 절망은 벼락 같고, 희망은 가랑비 같으다. 어디 도망가지 않도록 물고기 모이라도 한 봉지 사두어야겠다.


2022. 9. 2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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