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독
나의 남자친구로 알고 있는 그는 구름을 좋아했어. 함께 길을 거닐다가도 어느 순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자주 봤지. 그는 종종 자신이 커다란 성 위에 올라 있고 광활하게 펼쳐진 유럽풍의 마을을 내려다보는 영상을 ‘느낀다' - ‘본다'보다는 더 정확한 표현일 거야 - 고 해. 그 유럽풍의 마을 위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거대한 뭉게구름들이 지나는 거야. 그는 그 구름들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고 했어. 그렇다면 그는 그 마을 속에 있는 오래된 집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해. 그는 바라보는 자인 동시에 경험하는 자이기도 한 거야. 그가 우리 사이에 놓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탓일까. 사람의 인연이란 시간이 흐른 다음 생각해보면 참 묘한 것이어서,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 꼭 만나야 했을 사람들이 만났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너와 내가 고교시절에 그 음악실에서 아무런 예정 없이 교통사고처럼 만났듯이.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고 봐. 우리는 서로를 비켜갈 수 없었고, 상처받았어야 마땅한 상처를 입었지. 재작년 첫 봄비가 오던 날이었나. 아직 그가 남자친구가 아닌 친구였을 때, 나는 그를 집으로 초대했고 네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어. 대학원 도서관이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놓여 있고 그 위로 지브리의 만화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거대한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 위로 유영하고 있는 사진이었지. 그는 그 사진을 1분도 넘게 응시하더니 사진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어. 줄 수도 있었지만 절대 줄 수 없다고 했지. 사람은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실은 인생의 모든 시나리오를 자기 가슴속 어딘가에 써놓고 태어난다고 봐. 나는 그의 표정과 그의 목소리에서 그 시나리오의 힌트를 발견했지. 마치 선지자처럼 알 수 있었어. 그가 너를 사랑하게 되리란 것을. 그 사진을 준다는 것은 곧 너를 그에게 선물하는 것과 같으리라는 것을.
비틀즈의 초기 음악은 앨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을 흠모하여 만들어졌어. 무질서하고 충동적이며 반항적이었지. 이 커번 클럽에 그들의 ‘처음'이 남아 있어. 러브 미 두(LOVE ME DO)로 다듬어지기 이전의 서투른 소년들이. 내가 너에게 쓰는 이 편지도 1년 뒤엔 서투른 편지가 되고 말 거야. 소녀소년들의 아름다웠던 사랑이 세월의 힘 앞에 서툴었던 상흔으로 남게 되는 것처럼.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같은 반의 한 남자아이와 사귀었었어. 그 아이는 또래보다 키가 훌쩍 컸고, 어딘지 모르게 조숙했고, 늘 어떤 고민에 휩싸여 있는 듯한 아이였지. 우리 반 여자아이들 중 10명 이상이 남 몰래 그 아이를 좋아했어. 그러나 워낙 풍기는 분위기가 남달라서 아무도 접근을 못했지. 그런 그가 그의 추종자들도 아무도 모르게 내게 고백을 해왔어. 새 학기가 시작하고 3주 즈음 되었을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교실에 돌아와보니 책상 서랍 안에 쪽지가 있었어. 간단한 문장이었지. ‘첫눈에 반했어.’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이 써있었어. 그 아이의 글씨체를 난 알고 있었어. 그 아이가 쓴 게 틀림없었어. 우리는 주말에 도서관에 함께 갔고, 까페에서 커피를 나눠 마셨고, 사귄지 한 달후 밤길을 걸어오다 오래된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서 첫 키스를 했어. 그리고 다시 한 달뒤 헤어졌지. 그가 자기 집이 비었다며 날 초대했는데… 그의 집에 들어가서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가 날 자기 침대에 눕히고 강제로 옷을 벗기려 한 거야. 나는 그의 급소를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고서야 그의 집을 나올 수 있었어. 우리는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헤어졌어. 헤어진 다음날 그 아이는 대기하고 있던 다음 여자아이와 사귀기 시작했고 나는 음악실에서 널 만난 거야. 사랑이라 생각했던 순간은 어렴풋이 얼굴을 비추었다가 이내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 반에서 나의 첫 연애를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순진했던 소년이 순수한 성의 욕망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 낭만은 현실이 되고, 아름다운 사랑은 서투른 첫 경험으로 이름을 바꿔. 서툴렀던 시간이 서투른 이 편지와 함께 흘러가고 있어.
정박한 배들이 부아앙 부아앙 뱃고동 소리를 내고 있어. 불빛을 보면 모여드는 어류와 오징어 따위를 잡기 위해 떠나려는 배들이지. 생명체는 저마다 어떤 대상에 홀리게끔 설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불나방은 불빛에, 해바라기는 태양에, 새는 하늘에, 인간은 인연에. 한용운의 임의 침묵 한 구절을 떠올려봐.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만날 때 서로가 만날 것을 몰랐던 것처럼 떠날 때에도 다시 만날 것을 알 수 없어.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흐릿해. 안개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빛이 있을지 알 수 없어. 여운아, 내가 지금 너에게 알 수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버드와이저의 맛 정도야.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대략 5도 정도의 온도를 지닌 이 차가운 액체는 내 속에 들어가 자꾸만 ‘고요'를 해치며 나를 부정하게 만들고 있지. 맛은 꼭 새벽 두 시 즈음에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 귤빛 전구 하나를 켜놓고 노라 존스의 돈 노 와이(Don’t Know Why)를 들으며 잠 못 이루고 있는 듯한 맛이야. 이해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