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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도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발췌

요즘 읽고 있는 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에서 

인상적인 글이 있어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 씁니다.




142 p ~ 144 p 1/2  어린 왕자 인용 부분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습니다. 왕자가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오자 여우가 말했습니다. "아, 눈물이 나올 거야."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너 때문이야. 난 너한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어. 하지만 네가 길들여달라고 했잖아."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래, 맞아."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눈물이 나올 거라니!"

여우가 말했습니다."그래, 맞아."

"그럼 너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여우가 말했습니다. "아냐, 그렇지 않아. 밀밭이 있으니까, 다시

장미꽃을 찾아가 봐. 그럼 네 장미꽃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을 거야.

그런 다음에 내게 다시 와서 작별 인사를 해줘. 비밀을 하나 선물할게."

어린 왕자는 장미꽃이 만발한 곳으로 갔습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이 아니야. 그리고 너희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야.

어느 누구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도 어느 누구를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여우랑 똑같아. 그때 그 여우는 수많은 여우들 중에

하나에 불과했어. 하지만 이제 내 친구가 된 여우는 특별한 존재야."

이 말에 장미꽃들은 무척 당황했습니다. 어린 왕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너희는 아름다워. 하지만 의미는 없어. 너희를 위해서 죽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 지나가는 나그네 눈에는 나의 장미꽃이 너희들과 똑같아 보이겠지.

하지만 내 장미꽃은 너희들 같은 장미꽃 수백 송이를 합친 것보다 소중해.

왜냐하면 내가 물을 준 장미꽃이니까. 내가 유리로 상자를 만들어준 장미꽃이니까.

내가 만든 차양 뒤에서 햇빛을 피하던 장미꽃이니까. 나한테 송충이를 없애달라고

부탁한 장미꽃이니까(두세 마리는 나비가 되라고 남겨놓긴 했지만). 투덜대거나 

으스댈 때마다, 가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때에도, 내가 귀를 기울여줬던 장미꽃이니까.

그 장미꽃은 내 장미꽃이니까."

이제 어린 왕자는 다시 여우 곁으로 갔습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안녕."

여우가 말했습니다. "안녕. 이제 나만의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마음으로 봐야 정확하게 볼 수가 있어.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어릴 적 읽어보았던 어린 왕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누가 물어보면, "읽어는 봤지, 여우 나오고 그런 거 아냐?" 이 정도..


이제 나이를 먹으니,

위에 마지막 문장 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감동을 주고, 

인사이트를 준다.






145 p ~ 147 p 


놀랍게도,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들은 아주 많은데도 그것은 중 눈에 보이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매우 적습니다. 제가 무척 존경하는 하버드 대학교의 버크민스터 풀러 교수가

얼마 전에 우리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분은 커다랗고 두툼한 안경을 끼고 귀에는 보청기까지

달았지만, 분필 한 자루와 칠판 하나를 가지고 사람들을 3시간 내내 꼼짝 못 하게 만들 정도로

열정이 넘쳤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얼마 전에 버크민스터 풀러 교수도 수많은 위인들이

던졌던 질문을 똑같이 제기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육체일까?

정신일까? 팔일까? 다리일까? 손가락일까? 정말로 소중한 게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누구일까?

그분이 얼마 전에 <새터데이 리뷰>에 멋진 글을 기고했습니다. 78세의 나이에도 무엇이 인간을

독특한 존재로 만드는지를 탐색한 탁월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이렇게 신비로운 이유,

한 인간을 알게 되면 그 독특함과 색다름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에 대해 썼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제 삶에는 여러분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없이는 제 삶이

완전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건 여러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알고 난 후에 제게 비로소 뭔가를 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분명히 파악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모든 것은 더 많은 걸 쌓아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새터데이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버크민스터 풀러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78세다. 그동안 1,000톤이 넘는 물과 음식과 공기를 섭취했으며, 또 그만큼의 머리카락, 피부,

살, 뼈, 혈액을 폐기 처분해온 나이다. 나는 3.2킬로그램으로 태어나 32킬로그램, 72킬로그램이 되더니

92킬로까지 나간 적이 있다. 그러다 다시 32킬로그램이 빠졌는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32킬로그램은 누구였지? 난 여기 이렇게 건재하게 살아 있는데."

내 몸에서 뼈져나간 32킬로그램은 1895년에 뼈와 살의 재고 목록에 기재되었던 내 몸무게의 열 배에

해당한다. 최근 며칠 동안 먹은 음식의 무게를 모두 더한다고 해서 그때의 내가 되지는 않는다. 그 음식들의

일부는 잠깐 내 머리카락이 되었다가 한 달에 두 번씩 잘려 나갔을 것이다. 오장육부에서 빠져나간 32킬로도

'나'가 아니며, 현재 내 몸속에 남아 있는 원자들도 '나'가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덧없고,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의 집합체를 '나', 혹은 '너'로 규정짓는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람이 눈을 감으면 부산한 저울질이 시작된다. 암에 걸린 빈공충들은 아예 저울을 침대로 삼는다. 생전과 사후의 몸무게 차이는 허파에서 빠져나간 공기와 외부로 방출된 소변의 양에 불과하다. 목숨은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무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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