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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링 Jul 21. 2022

찾았다 내 사랑.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2년 동안 캘리포니아에 있었을 때는 교회 어린이 성가대에 가입했다. 당시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의문이 든다. 수줍음이 극도로 많던 아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전까진 한 번도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 후로 2년 동안 매주 성가대에서 ‘글로리아’ 같은 노래를 불렀고, 여러 무대에 섰으며, 카네기 홀에서 다른 성가대와 합동 공연까지 했다. 공연 자체는 별로 인상 깊지 않았다. 그보다는 뒤풀이에서 노래 부르던 여자애만 생생히 기억난다.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피아노를 치며 열창하던 다른 성가대의 보이쉬한 애한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당시에는 피아노도 쳤고 노래도 곧잘 불렀지만,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건 차원이 달라 보였다. 질투 날 정도로 부러웠지만 걔는 나 같은 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빛났다.


그와 별개로 듣고 싶은 음악은 언제나 있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그날의 노래밖에 없었다. 어디서나 이어폰을 꽂고 다니며 그날의 날씨와 오늘의 기분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는 건 단순한 취미였다. 난 '언니네 이발관' 같은 인디밴드를 좋아했다. 그만큼 마음에 와닿는 노래는 블로그에서 일일이 들어보고 파도를 타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즈음 상황이 달라졌다. 엑소 카이 오빠를 만난 것이다. 춤추고 노래하며 웃음을 흘리는 카이 오빠는 삶의 낙이자 절대적인 원동력이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아이돌 노래만 반복 재생하며 희로애락을 느꼈다. 고등학교 생활은 대체로 각박했다. 일상적인 감각은 무뎌졌고, 그로써 음악을 좋아한다는 마음은 서서히 빛이 바랜 것 같다. 감정은 입시에 불필요했으며 나는 음악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스무 살이 되었다.


잊고 있던 감성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독파하며 생생하게 살아났다. 카이 오빠는 진작에 날 배신했고(고3 때 크리스탈이랑 연애했다), 성인이 되자 감정은 난데없이 요동쳤는데, 하필 하루키는 재즈와 롹(Rock)을 사랑했다. 그렇게 70년대 사이키델릭 밴드❮더 도어즈(The Doors)❯를 찾았다.


⟪더 도어즈(The Doors)⟫의 보컬 '짐 모리슨'


사랑은 쉽게 옮겨 붙는다. 도입부의 오르간 소리와 주술적인 목소리, 보컬 ‘ 모리슨 도발적인 가사, 6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는 압도적이었고,  기꺼이 죽은 자의 팬이 되었다. 4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분명 그루피( 밴드들을 쫓아다니는 열성적인 여성팬) 되어  몸과 마음을 바쳤을 테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를 만나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천만다행이다. 나는 집을 나와 옷을 반쯤 걸치고 마약에 절어 이십 대에 아사할 수도 있었다.


짐 모리슨으로 지펴진 애정은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번져 롹이라는 장르 자체에 옮겨 붙었다. 물론 나보다 롹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롹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롹을 닮고 싶었다. 섬세하고 강하게. 하고 싶은 말은 쫄지 않고 대범하게. 악을 쓰며 노래하는 펑크 밴드처럼 존나 약해도 강한 척 살아가고 싶었다.


슬프게도 할 줄 아는 건 헤드폰을 끼고 글 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물 셋에는 영화과를 준비했다. 영화를 즐겨봤고, 글 만으로는 표현하고 싶은 걸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고 느꼈다. 생전 처음 픽션을 쓰게 되었는데, 낯선 욕망이 캐릭터를 통해 버젓이 드러났다. 모든 인물들이 하는 말이 와닿았다. 타자를 치며 전에 없던 희열까지 감돌았다. 인스타에 올리는 산발적인 글보다도, 비공개 블로그 보다도, 일기보다도 온전했다. 고백인지도 모르면서 진심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 열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 자소서까지 작성했다.


장래에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당시 비틀스의 노래 'A Day in the Life'에 심취해 있던 나는, 언젠가는 그런 노래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썼다. 노래의 후렴구에 나오는 불협화음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매그놀리아'의 후반부와 비슷했다. 등장인물도 관객도 숨을 멈추고 그저 장면 앞에 존재하게 하는, 그런 풍경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막상 자소서를 다 쓰고 나니 공허했다. 과연 내가 영화를 만들 만큼 좋아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것만 만들겠다고 결심했는데, 영화는 보면 볼수록, 많이 볼수록 지겨워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노래가 흐르지 않는 영화는 흥미롭지 않았다. 음악이 없는 영화는 보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아무래도 영화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24살이 다 되어가는데 음악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떨쳐지지 않았고, 소심하게 내가 좋아하는 밴드를 하나하나 구글링 했다. 짐 모리슨. 그는 UCLA의 영화과를 졸업하고 해변가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 레이 만자렉 앞에서 자신이 지은 시를 낭독한다.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던 레이가 다소 날렵해진 짐의 외모와 에로틱한 그의 시에 반해 결성한 밴드가 ❮더 도어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짐은 폭발적인 인기와 LSD(환각제)에 힘입어 당대 최고의 리드 싱어로 거듭난다.


롹 밴드는 얼떨결에 결성된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밴드는 대부분 그렇다.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도 그랬고 시인이자 작가 ‘패티 스미스’도 그랬다. 우연한 계기로 헤쳐 모여 당대를 풍미했으며, 우린 알게 모르게 그들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다. 이쯤 되니 음악을 시작하지 않는 건 핑계 같았다. 쪽팔리겠지. 하지만 쪽팔리지 않는 것보다 후회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화성학과 코드의 개념을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4살이 되어서야 코드의 존재를 알았다. 음악은, 타고난 사람들만, 이른바 절대 음감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감히 넘볼 수 없는 분야는 아니었다. 마치 고딩 때 여자애들을 휩쓸었던 핫보이가 성인이 되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는 깨달음과 유사했다. 진작에 배울 걸, 하는 후회와 지금이라도 배워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설프게 기타 코드를 잡고 노래하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나는 노래를 잘 못한다. 꾀꼬리 같은 가수들에 비하면 내 목소리는 형편없다. 기타를 잘 치지도 못한다.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연주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노래를 만들 때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기타는, 유령 같던 단어를 소환한다. 노트를 펼치고 멜로디를 얹으면 죽어있던 말이 살아나는 것 같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라는 생각이 그제야 든다. 말을 뱉고 나서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헤아린다. 지겨웠구나, 화가 났구나, 그리웠구나, 한다. 노래를 만들 때마다 모호했던 감정에 살이 붙는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그날의 노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잠깐이나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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