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과 ⟪섹스 앤 더 시티⟫
최승자의 산문집에 ‘적막강산’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재작년 여름에 ⟪모순⟫을 읽다가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던 키티 생각이 났다. 그녀는 지금 영국에 있다.
팬데믹이 기승이던 2021년 여름, 키티도 나도 둘 다 한국에 있었다. 우린 여섯 시쯤 압구정 로데오에서 만나 샐러드 볼을 먹고 그라피티로 둘러싸인 지하도로를 거쳐서 한강을 산책하고 헤어지는 루트로 밤 산책을 했다. 오래된 부부의 데이트 코스 같았다. 숙제 같은 작업을 하다가 이 주에 한 번씩 밤공기를 가르며 나갔다. 우린 둘 다 찐따 같은 안경을 쓰고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서로의 앙증맞은 필통을 칭찬하며 지냈다. 평소에 말을 아끼던 나는 키티 앞에선 발정 난 강아지처럼 쉴 새 없이 얘기를 쏟아내기 일쑤였다.
하루는 키티가 양귀자의 ⟪모순⟫을 읽어봤냐고 물었다. 교보문고 스테디셀러에서 그 책을 수어 번 펼쳤다가 내려놓은 참이었다. 입소문이 자자해 읽어보려고 핀 페이지마다 구식이었다. 단어가 촌스러웠고 캐릭터도 비호감이었다. 책의 인상이 별로라고 하자 키티는 ‘아주 기묘한 책’이라며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으니 꼭 읽어보라고 말했다. 설득을 넘어선 강매였다. 표지가 자주 바뀌는데 이번 에디션은 색이 구린 것 빼곤 완벽하다고 했다. 키티가 강요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난 커버가 좀 더 세련된 버전의 ⟪모순⟫을 구매했다. 놀라웠다. 주인공 안진진의 선택 중 무엇하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나 진진이 떨쳐지지 않았다. 책을 덮고선 제목과 똑같은 기분에 휩싸였는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로 ⟪모순⟫은 나의 ‘다시 보기’ 반열에 올랐다. 같은 칸 다른 섹션엔 ⟪섹스 앤 더 시티⟫가 있었다.
스무 살에 우린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살자고 약속했다. 스물둘엔 선망의 대상이었던 캐리가 쿨한척하는 썅년이었다는 데에 동의했고, 스물넷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샬롯이 진정한 승자라는 걸 깨달았다. 솜사탕 같던 썸이 가루로 휘날릴 때마다 난 자동적으로 ⟪섹스 앤 더 시티⟫를 답지 삼아 열분을 토했다. 남자는 존나 어려웠다. 걸어 다니는 커플들은 전부 기적이었고, 알바하는 곳에 오는 커플들은 눈꼴셨다.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자에게 까이고 전화하면, 키티는 심드렁하게 날 구박하며 위로했다.
사실 그녀의 말이 위로가 되었던 적은 없다. 키티는 시니컬하다. 그녀는 애인을 사귄 적이 없었고 난 정상적인 남자를 만난 적이 없으니 우리의 대화는 캐리의 신용카드 빚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문제는 마놀로 블라닉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 시간을 넘기던 통화 끝엔 시원 찝찝함이 남았으나 우린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 했다. 적어도 난 그랬다. 둘 다 정확히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서로의 기구한 역사를 상기시키며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렸다. 저번에 그 ‘글 쓰는 애’는 그랬고 이번에 '요리 하는 애’는 이랬다며 익명의 남자들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난 주로 너무 빨리 섹스했고 키티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참한 여우였다. 빠른 섹스라는 게 있을까 싶지만 하루 만에 관계를 가지는 건 확실히 빨랐다. 분위기에 휩쓸렸기 때문인데, 남자들이 섹스를 위해서 어디까지 입을 털 수 있는지 몰랐다. 문제는 칼로 도려내듯 명확하지 않았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그랬다. 아니, 키티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만 그랬다.
남자가 얽히지 않은 키티는 유능하고 객관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현 상황을 진단한 후, 해결책을 찾고 머지않아 실행했다. 난 뭐랄까. 언제나 목표가 희미했다. 목표의식을 갖고 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굴었다. 행동보다 말이 앞섰다. 삶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고 단지 기분이 좀 더 좋았으면 했다. 툭하면 울었고 대체로 지쳐있었으나 하고 싶은 건 많았다. 그래도 배우고 싶은걸 배우고 있었다. 낙엽 같던 만남들은 어찌 보면 성공적인 배움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후유증은 거셌고 난 봄철에 남자랑 손이나 좀 잡았으면 했다.
숱한 대화 중 가장 의미심장했던 건 같은 해 여름, 어김없이 허무했던 썸을 끝낸 뒤의 일이다.
우리 너무 건강한 척하면서 사는 것 같냐고 묻자 키티는 “그렇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 민폐지”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으나 도대체 건강하다는 건 뭘까? 그 이후로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왜 우린 건강한 척 세상을 누비며 다닐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를 어르고 달래며 만나는 것 같았다. 왜 그 남자는 첫 데이트에서 내게 공황장애가 있다고 말했을까. 그리고선 4년 사귄 전 여자 친구의 사정이 딱해서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전 여자 친구를 잊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왜 ‘공황장애가 있으며 전 여자 친구를 못 잊는 듯한 서른셋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왜 또 너에게 이러고 있을까.
키티가 내게 질려 버릴까 봐 염려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털어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여느 때처럼 메모장을 켜고 남자와의 대화를 복기하며 나의 실패를 분석하기엔 그날 밤은 심히 무더웠다. (물론 그 후에 시원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노트를 꺼내 분석을 시도했다. 그중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캐리를 롤모델로 삼아 우리의 연애는 막막했던 걸까. 작년에 우리의 결론은 ‘시답잖은 남자를 만나 시간 낭비할 바엔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게 낫다.’였다. 그러나 둘 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명징했다면 무엇이라도 했을 것이다. 키티는 작업을 하듯 남자를 공략했을 테고 테고 난 새로운 취미를 배우듯 상대를 탐닉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린 사랑에 진심이었다. 난 이상한 남자들에게 이상한 여자로 남은 채, 키티는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 본 채 반 오십이 되었다.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전화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고 싶다. 일 년 이상 연애를 해보고 싶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 그 당시 사랑에 대한 나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었지만 이젠 정말로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왜? 우린 언제나 사람보단 사랑에 너무나도 진심이었나.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에 '적막강산'이 1위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적막강산(寂寞江山, `고요 속에 잠긴 쓸쓸한 강산'이라는 뜻으로, 앞일을 내다볼 수 없게 답답한 지경)
2022년 3월 19일